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 부부에게 고민거리 하나가 생겼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린 휴가를 올해에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번 휴가는 사정으로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아 특별히 계획을 세울 만한 게재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이번 휴가는 조용히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간직해 주는 데는 시간과 돈이 중요하지 않다며 나를 설득시켰다. 아내와 나는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휴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에게 농촌 체험 형식의 색다른 방학을 경험케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사는 이곳 동해안은 해수욕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으레 아이들의 피서지는 바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 또한 다른 곳으로 피서를 간다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 했다. 1박 2일간의 휴가를 며칠 앞두고 나는 인터넷과 책자 등을 활용하여 우리 고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지역을 샅샅이 알아보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곳이 아우라지 뗏목축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정선이었다. 아침을 먹고 난
퇴근 시간, 교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1학년 3반 ‘익진’이라는 아이였다. 뇌성마비로 말도 잘 못하고 걷는데도 불편함이 많은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는 맨 앞에 앉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내 수업을 경청하는 아이였다. “익진아, 여긴 어쩐 일이냐. 누굴 찾으러 왔니?” 내 말에 그냥 피식 웃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가 않는 듯 했다. “선~상님” “그래, 말해 보거라.” ‘익진’이의 손에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과자봉지 같았다. 두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오자 그 과자 봉지 위에 ‘뭉클’이라는 두 단어가 선명하게 씌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부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익진이에게 그 과자 선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좋겠구나.” ‘익진’이는 불편하고 때묻은 손으로 과자봉지를 내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래 이거 누구에게 전해줄까?” “선~상님……” “그래, 부끄러워 하지말고 얼른 말해 보렴. 여 선생님인가 보구나.” “선~상님……” 갑자기 ‘익진’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봉지를
요즘 아이들 앞에서 웃음을 지어 보인지가 오래된 것 같다. 매번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말없이 성적통계표를 내 앞에 꺼내 놓으면서 얼굴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나마 성적이 향상된 아이들은 칭찬의 말을 기대라도 하듯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나의 무반응에 그냥 교탁 위에 성적통계표를 올려놓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두 어깨가 기가 죽은 듯 더 처져 보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맞은 것보다 틀린 것이 더 많은 문제지를 들고 한숨짓는 아이들의 소리가 내 귓전까지 들려온다. '이게 점수야, 고3이 맞아?'라고 버럭 소리도 질러보고 싶었지만 솔직히 이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최선을 다 했으리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위안 아닌 위안을 찾아본다.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작은 눈망울들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교단에 선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가끔 놀랄 때가 있다. 4월. '아직까지 초반이라 괜찮을 텐데….' 벌써부터 지쳐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