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교육 공동체는 어떤 질문을 할까요? 각자의 역할과 입장에서 다양한 질문을 할 것입니다. 이때 공통으로 품은 질문은 아마도 ‘사람’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어떤 학생을 만나게 될까?’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까?’ 두 질문은 교사 입장에서는 함께 일을 추진할 동료 교사와의 만남, 자신이 가르치게 될 학생들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함께 배우고 성장할 친구와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교사와의 만남입니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성장을 위해 누구를 만나는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선생님과 학생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작부터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수용해야 하는 데서 불안과 불만이 만들어집니다.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이상 질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전제조건을 받아들이고 다시 질문해 볼까요? 갈등을 없애려면? 최근 교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학생들 간 갈등을 없애려면?’ ‘학부모의 민원이 없어지려면?’ 이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갈등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볼까요? 자신만을 위한 행동과
새해를 맞이했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달력이 바뀌면 마음도 새롭게 다지게 된다. 교사들에게 1월은 재충전과 자기 돌봄을 위한 시기이다.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휴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기도 한다. 운동 외에도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명상과 호흡, 취미활동, 좋아하는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 가기, 충분한 휴식과 수면 등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여기에 ‘고마움’을 더해 보면 어떨까?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더 많이 느끼게 돕고 충족감도 증폭시킨다. 내면에 잠재한 힘을 깨우는 법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자 원하는 것이 있었다. 허수아비는 뇌를 원했고,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사자는 용감해지기를, 소녀 도로시는 집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마법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수아비나 양철 나무꾼, 사자는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했으면 됐다. 도로시는 집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결심’만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려줘도 그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냥 마법 의식을 치르는 척한 것이다. 이 마법 의식은 주인공들의
우리 교실에는 어떤 말들이 오고 갈까요? 어떤 말들을 사용할 때 행복한 교실을 만들 수 있을까요? ‘감동적이야’ ‘도와줄까?’ ‘좋은 생각이야’ ‘고마워’ 같은 말이 가득한 곳이 당연히 행복한 교실이겠지요. 그런데 왜 이 당연함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꽃밭을 만드는 언어 흔히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욕이나 비속어를 쓰지 말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욕이나 비속어를 쓰지 않는다고 행복한 교실이 될까요? 욕과 비속어를 쓰레기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쓰레기로 가득 찬 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열심히 쓰레기를 치웁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난 깨끗한 빈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팻말을 세워 뒀습니다. 그러면 이제 쓰레기를 쌓이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그 팻말 옆에 떡하니 쓰레기봉투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주인은 고민하다가 더 강력한 문구와 함께 철조망을 쳐뒀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경찰에 신고함.’ 그런데도 사람들은 철조망 너머로 쓰레기를 던졌습니다. 주인은 고심 끝에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으로 가꾸었습니다. 새로운 팻말도 세웠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습
감사일기를 쓰면 뭐가 좋을까? 일반적으로 감사함을 찾다 보면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 행복지수는 낙천에 의한 것일까? 낙관에 의한 것일까?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 따르면 낙천은 세상을 즐겁고 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고, 낙관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 사물을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낙관주의는 희망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찾아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희망인지를 살피며 세상을 향해서 움직인다. 감사일기는 일상을 세밀하게 보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키워준다는 측면에서 낙관자의 삶이 되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 감사일기와 낙관주의 “예능 프로그램을 10시간 보아도 피로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쓴 최진석 서강대 철학 명예교수의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정말 그렇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볼 때는 머리도 아프지 않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보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예능은 보는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낸다. 생각하려면 머리를 써야 하니 피곤해진다. 예술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펴야 해서 그것을 향유하는 자가 적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