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야행(錦衣夜行)’은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 말로 ‘비단옷(緋緞-)을 입고 캄캄한 밤길을 간다’는 뜻이다. 겉만 화려하고 별로 보람 있는 일이 아니거나 성과 없는 행동을 경계하도록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진(秦)나라 도읍이었던 함양(咸陽)을 침공한 항우는 나이 어린 왕자 자영을 죽이고, 아방궁에 불을 지르며 시황제(始皇帝)의 무덤까지 파헤치는 잔인함과 온갖 재물과 미녀들을 취하는 타락함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모신(謀臣) 범증(范增)은 올바른 제왕의 모습을 찾을 것을 간곡히 간청했으나 충언을 듣지 않았다. 항우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입신출세한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출세하고, 부귀해졌는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멋진 비단옷을 입고 밤에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아주겠는가?” 역설하자, 한생이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나라는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웠을 뿐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꼭 맞는 말이다”라고 말하자 이에 크게 진노한 항우는 한생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항우는 소원대로 고향으로 돌아갔고, 훗날 유방이 함양에 들어와 천하를 손에 넣었다. 정권이
2015-07-09 17:56요즘은 대부분 아파트를 주거 공간으로 하는데, 최근 지은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없는 집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있다. ‘베란다’는 거실이나 방에서 연결돼 밖으로 나온 공간으로 위쪽에 지붕이나 천장이 있다. ‘베란다’는 인도어 ‘바란다(verand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통 가옥 구조에서 ‘쪽마루’는 바깥쪽 둘레에 있는 기둥 밖으로 덧달아 낸 마루이니 ‘베란다’와 비슷하다. 건축 양식은 바뀌었지만 비슷한 용도로 쓰기 때문에 ‘베란다’를 ‘쪽마루’라고 해도 되겠다. (1) 베란다(veranda) → 쪽마루 베란다와 비슷한 모양으로 콘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코니’라고 불리는 공간도 있다. ‘발코니’는 베란다처럼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공간이다. 이 말은 스페인어 ‘발콘(balco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베란다에는 지붕이나 천장이 있지만 발코니에는 없다. 그 대신에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난간’을 설치했다. 그러니 발코니는 ‘난간’으로 바꿔 쓸 수 있겠다. (2) 발코니(balcony) → 난간 지붕은 있는데 벽이 없는 구조물도 있다. 눈이나 비, 햇빛 등을 가리기 위해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기차역이나 터미널
2015-07-09 16:18그릇은 비어 있기 때문에 제 구실을 하며 집은 빈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모든 사물은 비어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가치를 얻는다. 이것이 ‘무의 쓰임(以無爲用)’이다. 비어 있음의 무는 채워짐의 유에 의해 쓰임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비어 있음이라는 무형에 의해 만물은 그 가치를 확보한다. 곧, 유는 비어 있음이라는 무에 의해 이로움이 되는 것이다. 무가 없이는 현실의 사물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것이다. ‘노자’에 “30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 축으로 모여드는데, 그 가운데 바퀴통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 수레의 쓰임이 있게 된다. …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없음이 그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라 했다. 왕필은 주석(注釋)에서, “모든 것은 비어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것은 있는 것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있으며, 있는 것은 없는 것에 의지하여 그 쓰임이 있게 된다(皆以無爲用也 言無者 有之所以爲利 皆賴無以爲用也)”라 말했다. 수레바퀴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바퀴살과 양쪽 수레바퀴를 연결하는 굴대 축(軸), 그것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 뚫린 바퀴 통(
2015-07-02 19:53우리의 음식 문화도 어느새 서구화됐다. 빈대떡이나 파전 대신 피자를 즐겨 먹고, 더운 여름에는 수박화채에 얼음을 띄우는 대신에 과일 등을 얼려 만든 스무디나 주스 등을 살짝 얼린 슬러시 등을 더 좋아한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도 부엌에서 주방을 거쳐 이제 키친으로 왔다. 부엌에 설거지할 수 있는 싱크대가 놓이더니 이제는 준비대, 개수대, 조리대, 가열대, 배선대(조리된 음식을 상차림을 위해 그릇에 담는 곳) 등이 하나로 연결돼있는 붙박이형 부엌가구인 시스템 키친이 등장했다. (1) 키친(kitchen) → 주방 → 부엌 (2) 싱크대(sink臺) → 설거지대, 개수대 (3) 시스템 키친(system kitchen) → 일체형 부엌(주방) 요즘은 부엌에서 행주 대신 종이로 된 일회용 키친타월 또는 페이퍼타월을 흔히 쓴다. 세수하고 닦는 타월은 수건이지만 부엌에서 쓰는 타월은 행주다. 키친타월이나 페이퍼타월은 종이로 만든 수건이니까 ‘종이 행주’라고 하면 된다. (4) 타월(towel) → 수건 (5) 키친타월(kitchen towel)/페이퍼타월(paper towel) → 종이 행주 요새는 주방장이 주방에서 먹을 것을 요리하는 대신에 셰프가 푸드코트에서 레시피에
2015-06-25 18:11중학시절, 해마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고전읽기 경시대회’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효경(孝經)’이라는 책을 읽었다. 암기해야 할 많은 책 중 하나였다. 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다. 증자(曾子)의 물음에 답한 공자의 말이다.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다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고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고, 몸을 세워 도(道)를 행하여 후대에 이름을 떨쳐 부모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끝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천신만고 끝에 암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에 그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었다. 그 후 고교에 진학해 ‘소학언해’에 인용된 이 구절을 배웠음에도 너무 낡고 고리타분한 봉건적 가치로만 여겨졌다. 극단적인 해석으로 머리털은 물론 손톱 깎는 것조차도 꺼렸다는 일부 유자(儒者)들의 행태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성장해 나 자신이 부모가 되고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치면서 그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자녀들의 건강과 안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어서도 그랬거니와 ‘입신행도(立身行道)’의 함의가 주는 울림이 매우 컸던 것이다. 성인의 말씀
2015-06-25 17:49직역하면 ‘먼저 외(隗)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나(너)부터,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고 실천에 옮기라’는 말이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는 실로 역사적인 사건(?) 하나가 있었으니 34년 만에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일이었다. 사실 얘기하자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교육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고 교육자들의 자존감을 드높인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축사 말미에, “아무리 시대가 변화해도 스승의 역할은 바뀔 수 없다. 스승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을 잃는다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고 전제한 뒤 “정부는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자긍심을 가지고 교육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 나갈 것”이라고 가름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교육자 모두는 이제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변모할지, 교육입국의 의지와 존경받는 분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부푼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현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다소 가라앉히는 효과는 분명 있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자꾸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나 혼
2015-06-18 19:39최근 들어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않고 무선 전파 유도로 비행과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나 헬리콥터 모양의 무인 항공기 즉, ‘드론’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드론’은 원래 사격 연습용 표적으로 개발됐는데 최근에는 재난 구조부터 택배 서비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드론’을 이용한 택배업도 등장해 상업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 ‘드론’은 사람이 타지 않은 비행기니까 ‘무인기’라고 하면 된다. (1) 드론(drone) → 무인기 비행기 얘기가 나왔으니 항공 여행이나 공항과 관련한 말들을 살펴보자. 여행을 하기 위해 공항에 갈 때 대부분은 바퀴가 달린 가방을 하나씩 끌고 간다. 이 여행용 가방을 ‘캐리어’ 또는 ‘캐리어 가방’이라고 한다. 캐리어는 ‘나르는 것, 운반하는 것’이니 우리말로는 ‘나르개’다. 아이를 업을 때 쓰는 캐리어를 ‘아이업개’라고 하듯이 여행용 캐리어는 ‘여행가방’이라고 하면 된다. 흔히 슈트케이스(suit case)를 ‘여행가방’이라고도 하지만 여행 갈 때 끌고 다니는 바퀴 달린 가방도 ‘여행가방’으로 쓸 수 있겠다. (2) 캐리어(carrier) → 여행가방 공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하늘로 날아오
2015-06-18 16:43가야금 하나와 학 한마리가 전 재산이라는 뜻의 ‘일금일학(一琴一鶴)’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관직에 나갈 때 조촐한 행장을 하고 가진 물건이 얼마 되지 않음을 나타낸 청렴결백한 생활을 이르는 말’로 중국 송나라의 조변(趙弁)이 ‘관리가 됐을 때 거문고를 들고, 학만을 대동한 채 부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그 후 그는 더 높은 관직에 올랐으나 청렴한 생활로 자신이 본보기가 돼 잘못된 기풍을 바로 잡고, 백성들을 보살피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위로했다. 백성들은 매우 기뻐했고, 부패하고 간사한 관리들도 청렴한 그의 처신에 놀라면서 순종했다고 한다.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도 ‘청렴은 관리의 본분이요. 갖가지 선행의 원천이자 모든 덕행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목민관이 될 수 없다’며 목민관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규율로서 청렴을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렴이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다는 의미로 예부터 우리나라는 청렴을 관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겨 이를 실천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부 공직자의 뇌물수수, 관피아, 정경유착, 줄대기, 불법, 탈법 등의 부정·부패 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그로 인해 많은…
2015-06-11 21:03봄을 기다린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성급히 다가왔다. 날이 따뜻해 농사를 짓고 열매를 맺는다는 여름. ‘여름’의 옛말은 ‘녀름’이었고 ‘녀름’은 ‘농사’ 또는 ‘수확’의 뜻이기도 했다. 이 역사 깊은 우리말 ‘여름’의 자리를 ‘하(夏)’가 차지하더니 어느새 ‘서머’가 파고들고 있다. (1) 하절기(夏節期) → 여름철 (2) 하복(夏服) → 여름옷 긴소매 옷은 이제 정리하고 반소매 옷을 꺼내 입어야겠다. 여름에 입는 옷은 ‘서머 드레스’가 아니라 그냥 ‘여름옷’이다. (3) 서머 드레스(summer dress) → 여름옷 여름에도 멋쟁이들은 셔츠를 정장처럼 차려 입는 ‘셔츠슈트’를 입기도 한다. ‘셔츠슈트’는 남방을 정장처럼 입는 것이니까 ‘남방 정장’이라 할 수 있겠다. (4) 셔츠슈트(shirts suit) → 남방 정장 아주 더운 때는 갖춰 입는 것도 귀찮다. 시원하게 소매 없는 옷을 입기도 한다. 소매 없는 옷을 ‘소데나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소데나시’는 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민소매’가 제격이다. (5) 소데나시(そでなし) → 민소매(옷) 여름에는 옷도 시원하게 입지만 머리도 시원해 보이게 짧게 자르는 사람이 많다. 짧은 머리
2015-06-11 18:55재물(財物)은 본래 인간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간을 지배하는 물질이 돼 비인간화 내지 인간 소외(疏外)의 발원처가 됐다. 또 인간 스스로 화려한 물질문명 속에 파묻혀 그 외경심과 인간성을 배제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가치를 스스로 추락시킬 뿐 아니라 최근에는 경쟁논리를 내세워 인간을 물질적 척도로 평가하는 몰인정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에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내 몸을 일으키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써 재물을 일으킨다(仁者 以財發身 不仁者 以身發財)”고 했다. 현대의 삶 속에 인자(仁者)의 ‘이재발신(以財發身)’의 정신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반면 재물의 이익을 얻기 위해 사는 삶인 ‘이신발재(以身發財)’의 태도는 시대적ㆍ역사적 산물로 수용되고 미화되기까지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 천 년을 관통한 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고 강조했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솔선해 최전방에 나가 싸웠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금쪽같은 재산을 사회에 흔쾌히 내놓았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지성인의 의무이자 명예로 인식돼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뤄졌으며
2015-06-04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