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삶엔 말도 많다’는 노랫말처럼 지난 한 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마음 졸이며 애태운 순간도 많았고, 가슴 저린 장면에 눈물지은 적도 있었으며, 내 주변의 무탈함에 가슴 쓸어내리며 안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은화가족과 함께 호흡하며 나눌 수 있었던 더 없이 소중한 만남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상처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모’와의 만남은 내게 아주 특별했다. 아이를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만 지어도, 손만 내밀어 준대도 베풂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도 고마운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그 관심과 사랑은 늘 나를 필요로 하는 내 가장 가까운 만남 쪽으로 열려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만남이라는 스승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삐 달려온 지난 시간 중에 나무가 되고 싶다며 글을 쓰고 싶도록 부추기면서 줄곧 곁에서 페이스 메이커처럼 함께 뛰어준 모모에게, 그리고 뜻밖에 수상의 벅찬 기쁨까지 듬뿍 안겨준 분들께 깊이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멈칫거렸던 성장
2015-03-31 13:4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듣고 또 들어도 참으로 절묘한 말이다. 세상 온갖 꽃들은 그 한 송이 한 송이 화사한 절정을 위해 모진 비바람과 현기증 이는 뙤약볕, 으스름 밤, 오소소한 냉기까지도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했으리라. 어디 꽃만 그러하겠는가? 요즘 학교들을 속속 들여다볼라치면 그 속에는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도 있고, 크고 작은 울림소리들이 섞인 채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는 유난스레 더 뒤흔들리며 힘겹게 피어나야 하는 꽃봉오리들이 참말이지 많다. “선생님, 오늘은 모모 때문에 참 속상해요. 이젠 훔치기까지 하는 걸요.” 중학교 2학년 ‘모준식’(가명). 훤칠한 키에 날렵한 외모로 달리기를 잘하는 지적장애 학생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모’와는 별 연관이 없는데도 내가 준식이를 ‘모모’라 부르는 건, 순전히 이름을 듣는 순간 좀 드문 성씨인 ‘모’의 반복 음이 뜀박질처럼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이다. 모모와 달리기 최강 라이벌인 같은 반 ‘재훈’(가명). 둘 다 산만하기 짝이 없는데다 늘 만났다 하면 투닥투닥 몸싸움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해오던 터이다. 그러던 게 이젠 다른 친구의 물건에 손대는
2015-03-31 13:43지난 해 어느 봄날. 창밖을 내다보다고 서 있다가 선현들의 마지막 날 장면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책상에는 ‘퇴계집’이 펼쳐져 있었다. 이황(1501-1570) 선생의 문집이다. 한 인물의 생애를 알고자 할 때, 연보처럼 편리한 자료도 없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엮어서 처음부터 읽을 것도 없다. 선생의 생애 마지막 해인 경오년. 임종 전후의 기사를 보다가 눈길이 멈춘 곳은 서거 5일 전의 기사다. ‘12월 3일. 자제에게 남의 도서는 목록을 작성하여 돌려주라 지시하셨다(命子弟 錄還他人書籍).’ 이 기사의 다음에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조선 최고의 학자가 70세에, 그것도 임종을 눈앞에 둔 날에, ‘빌려온 책들은 빠뜨리지 말고 잘 돌려주라’는 당연한 말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옛말에 ‘책을 빌려주는 이도 바보, 빌린 책을 돌려주는 이도 바보(借書一癡, 還書一癡)’라는 말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떠돌던 때가 있었다. 책을 가진 이는 이 말을 구실 삼아 빌려주지 않아 책이 필요한 학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 바보 치(癡)자는 술단지를 뜻하는 치(瓻)자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 와전된 것이다.
2015-03-30 17:39외출을 위해 화장을 마쳤으니 옷을 골라 입어야겠다. 옷차림이나 옷맵시와 관련한 말에도 외래어나 외국어가 많다. 여성들은 속옷(←언더웨어)에도 꽤 신경을 쓴다. 정장을 입으려면 여성용 속옷(←란제리)도 갖춰 입어야 하고, 꼭낀바지(←빽바지)나 짧은치마(←미니스커트)를 입을 때는 팬티선(←팬티라인)도 신경 써야 한다. (1) 언더웨어(underwear) → 속옷 (2) 란제리(←lingerie) → (여성용) 속옷 (3) 빽바지(tight pants) → (꼭)낀바지 (4) 미니스커트(miniskirt) → 깡동치마, 짧은치마 (5) 팬티라인(panties line) → 팬티선 ‘스커트’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치마’면 충분하다. ‘쓰봉’이라는 일본말을 이제는 거의 ‘바지’로 대체해서 쓰지 않는가. ‘스커트’라는 말이 ‘치마’를 대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6) 쓰봉/즈봉(←jubon, jupon) → (양복)바지 (7) 반쓰봉/반즈봉 → 반바지 반쓰봉을 ‘반바지’로 잘 바꿔 쓰고 있는데, ‘쇼츠’나 ‘쇼트 팬츠/숏팬츠’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더 짧은 ‘핫팬츠’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8) 쇼츠(shorts), 쇼트 팬츠(short pants) → 반
2015-03-26 19:25적절한 치료 받지 않으면 만성으로 물 자주 마시고, 술·커피·담배 피해야 A교사는 최근 목감기로 보름 이상 불편한 생활을 했다. 쉼 없이 나오는 기침 때문에 밤잠도 설치고 목에 통증이 심했다. 또 오랜 기간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목소리가 쉬었다. 그런데 감기가 다 나은 후에도 목소리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아 병원을 찾아 받은 후두내시경 결과 후두염으로 진단받았다. 항상 큰 소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건강 이상 소견중 목, 즉 목소리는 취약한 신체 부위다. 목소리 발성은 후두에 위치한 성대의 떨림을 통해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성대는 남성의 경우 초당 120~150번, 여성은 200~250번의 진동을하며 목소리를 낸다. 이런 진동이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후두나 성대의 점막은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데, 말을 많이 하거나 건조한 환경에서는 점막의 점액질이 부족해지면서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거칠어진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지고 건조한 바람이 불 때는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에 감염되기 쉽다. 후두염은 후두기관에 포함되는 후두개(성문상부), 성대(성문을 이루는 기도), 피열연골주름 등에 염증이 생긴 상태이
2015-03-26 19:23'중용'에 “순임금이 묻기를 좋아했는데,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왜 이 사람이 그 말을 했는지 그 원인 등을 분석해 좋지 않은 것은 덮어서 드러내지 않고 좋은 말만을 남에게 말씀하셨다(舜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중용(中庸)의 도(道)를 알고 실천한 순임금의 ‘큰 지혜로움(大智)’을 다룬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혜로운 사람(智者)은 도를 밝히는 데 전념해 도를 실행하는 데 소홀히 할 수 있고, 어진 사람(賢者)은 도를 실행하는 데 전념해 도를 밝히는 데 어두워 결국 도가 밝지 않음으로 해서 중용의 도를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나 순임금은 말의 양단(兩端)을 잡아서 그 중용을 택하고 백성들에게 말해 주는, 대지(大智)를 실천했다(執其兩端 用其中於民). 사람이 ‘묻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으로 한계 짓지 않고 남의 지혜를 배우거나 상대의 문제점을 찾아 더 좋은 지혜와 대안을 만들어 내려는, 진취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다. 순임금은 사람들에게 묻기를 좋아했다. 이는 질문 속에서 해결할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찾거나, 그의 좋은 점 등을 배우려는(察理) 선심의 발로다. 일상의 대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말과 일상적 평범한 말(邇
2015-03-19 22:13연초에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사전 지식 없이 무심코 보게 된 영화였지만, 초입부터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남철수 장면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멎을 줄을 몰랐다.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는 주인공 덕수의 모습 위에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평생이 겹쳐졌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을 봉양하고, 다섯 동생과 슬하 여섯 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으셨던 아버지…. 귀가한 뒤 나는 서재에 보관된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며칠 후 후배들과 함께한 자리가 있었다. 대화 중 나는 ‘국제시장’이 준 진한 감동과 여운을 말하며 “모처럼 좋은 영화를 보았노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듣고 있던 한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진짜 우파(右派)셨군요.” 순간 나는 퍽 당황했다. 영화 한 편을 감동적으로 보았다는데 그것 한 가지로 나를 우파로 규정하다니. 하지만 그의 진지한 말투에 그 영화에 무언가 내가 보지 못한 하자(瑕疵)가 있는가 싶어, 어느 부분이 문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 영화를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파독…
2015-03-12 17:56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고 조직이 있고 리더가 있게 마련이다. 공자(孔子)도 논어에서 “三人行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학교는 어떤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좋은 학교에는 언제나 훌륭한 학교장의 경영철학이 있다”라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교직생활 중에서 학교장으로 재직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되는 사람은 단연 교장선생님이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7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토록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게 된 데는 교육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 교육의 힘은 오직 스승이라는 자긍심과 가르치는 데 혼신을 다했던 교육자의 노력이라고 단언한다. 일선학교를 책임지는 학교장의 책무는 그 누구보다도 막중한 것이었기에 오직 교육과 학교만을 위해 헌신해온 학교장의 교육애는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교육의 저력을 내보여야 할 때마다 학교장에게 더욱 책임을 부여해 강제했고 학교장은 그것이 운명이요, 사명이라는 확고한 신념 하나로 최선을 다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 학교장의 위상이 점차 박탈당하는
2015-03-05 16:24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공자는 ‘허물을 저질렀거든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허물을 고치려면 ‘재를 털어야 숯불이 빛난다’는 속담처럼 먼저 가감 없이 잘못을 드러내놓고 사과하는, 반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주변에서 이해하고 여기서 새로운 출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는 범부(凡夫)일지라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층의 경우는 이것저것 재느라 그 어려움이 더 크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 만나는 사과의 대부분은 진정성이 담긴 반성이 아니라 허물을 축소은폐하거나 변명인 경우가 많아서 자연히 그 효과가 없게 된다. 우리가 문헌에서 만나는 가장 유명한 사과는 상(商)을 건국한 성탕(成湯)의 사과이다. 즉위한 후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서 7년의 가뭄은 국가의 위기였다. 태사(太史)가 점을 쳤는데 ‘사람을 희생으로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비를 비는 것은 백성을 위해서이다. 희생으로 사람을 써야한다면 마땅히 내가 희생이 되리라.’ 성탕은 이렇게 말하고는 즉시 목욕재계하고 손톱과 머리를 깎고 몸에는 흰 띠 풀을 둘러 희생의 차림으로 백마가 끄는 소거(
2015-02-26 21:24외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말에도 외래어와 외국어가 많다. 이런 말을 어떻게 우리말로 바꿔 쓰면 좋을지 살펴보자. 외출을 위해 우리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샴푸를 대체할 우리 말을 따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액체 비누니까 ‘머리 물비누’ 쯤으로 바꿔 써도 괜찮을 것 같다. ‘린스’로 헹구고 ‘트리트먼트’도 쓴다. 린스는 헹굴 때 쓰는 비누니까 ‘헹굼 비누’로 바꿔 쓰면 되고, 트리트먼트는 머리카락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니 ‘머릿결영양제’로 바꿔 쓰면 된다. (1)린스(rinse)→헹굼 비누 (2)트리트먼트(treatment)→머릿결영양제 머리를 감았으니 물기를 말리려면 ‘드라이어’가 필요하다. 드라이어는 머리를 말리는 기구니까 ‘머리 말리개’가 제격이다. (3)헤어드라이어(hair drier)→머리 말리개, 머리 건조기 머리카락 끝이 말려 올라가니 ‘고데기’로 펴야겠다. 고데는 불에 달궈 머리 모양을 다듬는 기구니까 ‘머리 인두’로 다듬었다. 고데머리는 ‘지짐머리’로 바꿔 쓰면 되겠다. (4)고데/고테(こて)→(머리)인두(질), 지짐머리 머리가 좀 길어서 말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두질도 해야 하니 머리 모양(←헤어스
2015-02-26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