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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적 좋으면 꼭 의대에 가야해요?”

의대·법대에 올인…의·치대 50% 아시아계 차지
“전문직 모두 이민자에 빼앗길라” 우려 목소리

"왜 한국 아저씨 아줌마들은 나만 보면 이담에 의대를 갈 거냐고 물어보는 거지?"
"공부를 잘 하니까 그렇지. 너 듣기 좋으라고 그러시는 거야."
"글쎄,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하면 왜 모두 의대 아니면 법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에요. 세상에는 다른 재미있는 직업이 많이 있는데…"

새 학기가 되면 10학년(중 3)이 되는 아들애가 며칠 전 이런 식의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았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아들애에게 주위의 한국 분들이 칭찬삼아 하는 말이지만 듣는 제게는 부담도 되고, 왜 어른들은 한결같이 의대 아니면 법대에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아들 말마따나 한국 부모들뿐 아니라, 고달픈 이민생활을 자식들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한 아시안 부모들은 일단 성적만 되면 자식들의 적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의대나 법대로 진학시키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어디서나 떳떳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전문직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법관 아니면 의사이다보니 이웃 자녀인 우리 아들한테도 어른된 도리인양 가급적 의대에 진학하도록 강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해 말부터 시작된 호주의 대학입시 결과발표가 지난주에 모두 마무리 되었다. 올해 입시결과 및 경향분석에 따르면 예상대로 아시안계 학생들의 상위권 진출이 도드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일간지들은 현추세가 지속된다면 불과 한 두 세대만 지나면 호주의 전문직은 거의 아시안 이민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중동계 이민자들이나 유럽의 초기 이주자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거나 하급 기술 및 기능공 출신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아시안계 이민자들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대거 호주에 유입되어 2세에 대한 높은 교육열을 보인 결과라고 덧붙였다.

호주는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2천만 명 남짓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중 20% 정도의 인구비율을 가지고 있는 아시안 계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매년 대학입학시험 때마다 최고 득점자 1000명 중 350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편으로 정원의 30%내지 50%가 아시안 학생들이다.

그런가하면 법학과와 경영학과, 회계학 전공자 중에도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 아시안 학생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소위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주로 진학하는 몇 개 학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인 것이다.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합격할 수 있는 몇 개 학과를 놓고 벌이는 학생들간의 치열한 입시 경쟁은 호주라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학창 시절 내내 공부에 매달린 결과, 특별활동이나 다양한 특기를 개발할 기회 자체를 잃어버린 채 자기 적성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성적이 되니까' 무조건 진학을 하고 보는 현상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애의 말처럼 요즘 세상에는 재미있는 직종도 많고 직업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는가. 각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학과는 또 얼마나 많은지 대학마다 학과를 소개하는 안내책자의 부피만 보아도 학문적 호기심과 지적 소양을 축적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얼마나 풍부하게 열려있는 지를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안 수험생들의 경우는 성적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순서에 맞추어 의대와 법대 그리고 몇몇 귀에 익숙한 학과만을 장래 직업을 위한 전공으로 선택할 뿐, 나머지 수많은 학과는 단순히 커트라인이 낮다는 이유로 홀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호주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자의 나라이다. 이들을 아우르는 국가 제도와 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하다해도 각 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 정서와 배타적 선입견이 사회문제의 불씨로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시안 2세들의 특정직업의 대거진출 또한 인종분규나 사회적 갈등의 한 요인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본다면 한 커뮤니티가 사회의 전문지식 분야로 편중되는 현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타 이민자 그룹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 진학만이 능사가 아닌 것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한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고학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이민 생활이란 곧 자녀들의 전문직 진출이라는 등식을 적용하는 한국 커뮤니티를 비롯한 아시안 계 이민자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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