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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제한 '열린' 시험 논란

휴대폰에 인터넷까지 이용해 정답 작성 허용
학교측 "정보홍수시대 암기하는 지식은 무의미"
영어 시범실시후 연말엔 전과목으로 확대 방침
"수험자 실력 구분 모호하다" 학부모단체 우려

학창시절 한번쯤은 소위 ‘오픈 북 테스트(open book test)’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주로 사회나 정치, 경제 과목에서 시도하던 이 시험 방식은 교과서를 비롯해서 필기 노트 등을 펼쳐놓고 답안을 작성하도록 허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픈 북’으로 시험을 본다는 공지가 나오면 마치 그 과목은 미리 공부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어떤 방식으로 출제가 될지 호기심마저 동해 시험일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시험에 임하게 되면 책과 공책을 이리 폈다, 저리 폈다, 앞 페이지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허둥대던 아쉬움을 남기곤 해 처음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바로 ‘오픈 북 테스트’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오픈 북’ 시험의 의도는 정보나 지식을 머릿속에 수용하여 암기하는 능력에 비중을 두기보다 ,적절한 자료를 활용하여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기본 교과서와 수업 시간에 받아적은 필기 노트, 여기에 기껏해야 참고서나 문제집 정도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의 전부였다. 하지만 만약 이 시험 방식을 지금 세대에 적용한다면 사용 가능한 교재나 보조 기기가 매우 다양해서 ‘북(book)’을 오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정보 세상이 오픈되는, 말 그대로 ‘열린 시험’이 될 것이다.

최근 호주 시드니의 한 명문 여학교에서는 9학년(중3)들을 대상으로 전대미문의 열린 시험을 실시,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학교는 40분간 치러지는 영어 시험 중, 자료를 인용할 경우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전제하에 본인이 교실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 수단과 기술을 활용하도록 허용했다.

개인 휴대폰으로 문제의 정답이나 힌트, 해결방법 등을 외부에 문의할 수도 있고, 아이포드나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검색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학교는 영어 과목에 대해 일차적으로 열린 시험을 시범 실시한 후 올해 연말까지 전 과목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 영어과 주임 교사는 인터넷과 각종 전자 기기를 통해 정보를 얻도록 하는 ‘열린 시험’을 마치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베끼는 부정행위와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지만, 종래 각인되어 왔던 부정행위에 대한 고정 관념과 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정보가 쏟아지는 홍수의 시대를 살면서 방대한 양의 지식을 머릿속에 달달 암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도 불필요하다고 진단하며, 현대 사회는 갖가지 정보를 신속히 선별하고 체계화하여 취합한 내용의 신뢰성 여부와 효율성 및 적합도를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같은 획기적인 시험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전국학부모협회는 모든 학교가 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것은 별도로 필요한 교육이지만, 시험을 치를 때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시험의 본래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시험을 보는 도중,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의 정답을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는 상황들이 시험 운영을 극도록 혼란스럽게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등 온라인까지 동원된다면 시험에 임하는 당사자들의 실력이나 책임이 어디까지 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같은 시험 방식의 영향이 대학입학 학력고사 등 전국적인 시험제도에 검토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관련 부서는 평소 컴퓨터로 과제를 작성하는 습관이 들어있는 학생들이 최근 대입학력고사를 앞두고 긴 답안을 손 글씨로 메워야 하는 것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감안, 대입학력고사에서 컴퓨터 자판 사용을 허용할 것을 검토 중이지만,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을 시험장에 끌어들일 가능성은 고려대상이 전혀 아니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개로 호주의 학교 교육은 이해력과 창의력에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 학습의 기초과정이라 할 수 있는 암기력이나 반복 학습에 대해서는 저학년일지라도 훈련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열린 시험제도가 학교별로 광범위하게 실시된다면 암기 위주의 학습과 평가 방법은 설 자리를 잃게 되어 교육의 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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