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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의 진화

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123회

01
속담이 바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속담의 변이(變異)가 아주 역동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이것이 원래의 속담인데, 요즘은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로 변이돼서 쓰인다. 원래의 속담 표현을 비틀어서, 그 의미까지도 풍자적으로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원 속담이 지닌 품격 있고 교양 넘치는 의미를 저렇게 비틀어 버린단 말인가. 삭막하고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바뀐 속담이 보여주는 현실 풍자는 가히 기가 막히다. 생활 현장의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가 이걸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할 수만 있겠는가.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생겨, 차를 세우고 대로에서 상대방과 시시비비를 벌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바뀐 속담의 뛰어난 현실적 호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위층을 찾아가 항의할 때도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는 속담이 정말 적실하다고 믿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뀐 속담의 뜻풀이는 ‘부드럽고 좋게 말해선 되는 일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뭐 이쯤 되는 것이 아닐까.

속담(俗談)이란 원래 고상하기보다는 속된 분위기가 묻어 있는 언어 표현이다. 그래서 이름이 ‘속담’ 아니겠는가. 그러나 비록 그 표현이 속되기는 해도, 경계하고자 하는 뜻은 자못 바르게 사는 지혜를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개방적 네트워킹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포스트모던(post modern)하게 패러디 되어서 변이를 보이는 속담들은 표현도 속되고, 드러내는 뜻 자체도 고상한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속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전통적인 속담에 “꼴값 한다”가 있다. 이때의 ‘꼴’이란 ‘얼굴’을 뜻한다. 얼굴 중에서도 ‘잘 생긴 얼굴’을 뜻하는 말이다. 잘 생긴 사람이, 그 잘 생긴 얼굴을 과시하느라, 터무니없이 건방지거나, 잘 난 척하거나, 교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두고 ‘꼴값 한다’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원래의 속담이 지닌 의미이다. 

그런데 이 속담에도 요즘 묘한 변이형이 생겼다. “잘생긴 놈은 얼굴값 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이런 뜻인 것 같다. 꼴값은 이전에는 잘생긴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 꼴값이 오로지 못생긴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는 말이 됐다. 그뿐 아니다. 이 변이형 속담의 문맥을 잘 짚어 보면 뜻이 자못 고약하다. 못생긴 사람의 행동은 그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것이 모두 다 ‘꼴값’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인터넷과 온갖 디지털 매체들이 융합되면서 숱한 시각 영상들이 현대인이 사는 생태 환경이 된 셈이다. 대부분의 소통이 시각적 소통이므로 서로가 시시때때로 보여 주는 얼굴의 외관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대중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형을 몇 번씩 하는 것을 불사하는 일은 이제 연예인들만의 욕망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인들에게도 보편의 욕구가 됐다. 뜯어 고쳐서라도 잘 생긴 얼굴을 만들어야 출세한다는 생각은 이 시대 세태 인심이 됐다. 용모지상주의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잘생긴 놈은 얼굴값 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 한다.” 이 변이형 속담에서 느끼는 가치의 왜곡은 걱정스럽다. 잘생기면 그 자체가 미덕이고, 못 생기면 그 자체가 악덕이라는, 고약한 이분법적 편견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변이형 속담에서 ‘얼굴’ 대신에 ‘돈’을 대입해 보면 이 사고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눈치 챌 수 있다. 잘생긴 얼굴을 ‘돈 있음’에, 못생긴 얼굴을 ‘돈 없음’에 대입해 보면, 이 말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와 거의 같은 뜻의 말임을 알 수 있다. 속담의 변이 속에 세태의 인심을 읽을 수 있는 코드가 이처럼 많다.

02
격언이나 명언에도 세태를 담아내는 변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대응 지혜를 요모조모 수용하면서 재치 있게 변화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격언 하나를 상기해 보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시작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동기와 의욕이 중요한 것이지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리고,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교훈적 격언이 아니던가. 

이 격언이 이렇게 변이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딱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변이된 격언에서는, 어떤 왜곡된 비뚤어진 심사를 드러낸다기보다는, 그 나름의 교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에서 예를 든 “꼴값 한다” 또는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등의 변이 속담들이 다소 비딱한 저항 심리를 드러냈던 것과는 구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동기나 의욕이 있어도 때(timing)를 놓치면 실패한다는 그 나름의 시의성 있는 교훈을 드러낸다.

하나 더 보자. 예전에는 선생님이 나를 야단치면서 내 부모를 곁들여 함께 욕하면, 비록 내 과오가 있을지언정 이렇게 항변했다. “저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제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꾸중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른바 천륜(天倫)의 근본인 ‘효도’의 가치는 잘 내면화돼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의 효심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야단을 치는 선생님이 녀석의 벌을 감해 주는 모습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 자체가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인터넷에는 이 말을 기묘하게 전복시킨 다음과 같은 말이 기세등등하단다. “부모 욕하는 건 참아도 내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가족이든 학교든 그 어떤 공동체에 연대된 자아보다는 그냥 자유롭게 단독자로만 존재하는 ‘나’의 중요성을 더 앞세우는 이기적 세태라고나 할까. 발칙해 보이지만, 세상 변화와 사람 변화를 까칠하게 들이대는 격언의 변이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부류, 같은 구조로 된 격언의 변이를 하나만 더 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 가급적 빨리 긍정의 마인드로 다가가라는, 자기계발서 따위에 자주 등장하는 격언이다. 그만큼 익숙한 말이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부여하는 일의 어려움에 당면하여 머뭇거릴 때, 새 각오로 성실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돼 주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도 가벼운 조롱조의 변이가 생겨난다. “즐길 수 없다면 무조건 피하라.” 전복적 발상이 압권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 비공식적인 대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란다. 엄숙한 연대적 책무감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런 무거움을 넘어서려는 사고나 소통의 발랄함을 엿볼 수 있다.

03
진화란 생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과 결과이다. 진화의 구체적 과정은 무수한 ‘변이’를 통해 이뤄진다. 비단 생물뿐이겠는가. 말도 부단히 변화한다. 말도 생태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다. 속담이나 격언을 우리가 수사적(修辭的)으로는 ‘불후(不朽)의 명언’이라 일컫는다. 불후(不朽)란 썩지 않는다는 뜻이니,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세상에 변해 가지 않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화하지 않으면 아예 없어지기 때문이다. 

속담의 진화가 경박한 세태만 반영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불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통 속담의 훼손 측면만 보지 말고, 속담이나 격언의 전체적인 변화 현상을 의미 있게 읽어내려는 쪽으로 교육의 안목을 넓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불편한 진실’을 체득하는 삶의 공부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언어 변화 현상에 숨어 있는 인간과 사회의 의미를 교육이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야말로 속담 교육의 진화를 불러오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그간 교육이 속담이나 격언을 다뤄 온 전통은 다분히 규범적이고 경직된 면이 없지 않았다. 속담이나 격언이 어떤 변이 작용을 하는지 배우는 데서 언어와 인간에 대한 보다 역동적인 체험을 구성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변이 속담들을 소통시키는 맥락에서, 비뚤어진 세태와 각박한 인심을 개탄하는 비판의식이 함께 생겨나게 하는 것이 속담의 속성이기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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