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1년 앞둔 3월 첫 주 강의를 마쳤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강의를 해 왔지만, 첫 주 강의는 언제나 설렘과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첫 주 수업을 3시간 빡빡하게 진행했지만, 다행히 학생들이 내 기대에 호응하여 열심히 임해주었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와 드러난 반응은 그러했다.
2월 초에 강의계획을 제출하라는 대학의 연락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최근 몇 년간 해오던 강의계획서를 그대로 유지할까, 아니면 생성 AI 시대에 초점을 맞춰 강의계획을 크게 수정할까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3학점짜리 ‘교육행정 및 교직실무’ 강의계획서는 총 32페이지로 이뤄져 있는 한 학기 수업설계도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강의계획서를 보면 강의를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하게 만들어 놓았다.
생성 AI 시대의 학교·학급경영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학기밖에 남지 않았으니 강의계획서를 완전히 바꾸기보다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수정하고 싶은 내용을 반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획서를 보며 한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계획서와 다르게 수업을 진행할 경우 혼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노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고민을 멈추고 강의계획서를 대폭 수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학기까지 첫 3주간 강의에 사용했던 책과 강의계획을 삭제하고, 그 대신 출판 중인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 중에서 필요한 부분을 활용하는 강의를 삽입했다. 그리고 각 주 별 학급경영 계획수립에는 모두 생성 AI를 활용하도록 내용을 수정하였다.
2월 중순에 완전히 수정된 강의계획서를 대학 학사시스템에 탑재하고, 곧바로 내 강의용 LMS인 ‘클래스팅’에 강의실을 개설한 후 강의계획서와 인사말을 올렸다. 강의 안내 동영상도 시청하도록 링크를 제공했다. 강의 시작 2주 전에 해당 학과대표 연락처를 받아, 전체 학생들에게 전달하라며 상세한 문자를 보냈다.
며칠 후 대표들에게 수업용 단톡방을 만들고 나를 초대하도록 요청한 후, 개설된 각 과의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그렇게까지 연락을 했어도 단톡방에 초대된 학생들 숫자와 클래스팅에 가입한 학생 숫자를 비교해 보니 몇 명 차이가 있었다. 출석부와 대조하여 클래스팅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는 학생에게는 문자를 보내 가입하도록 안내했다. 기한 이후에 가입하면 과제함을 볼 수 없으므로 가입 후 나에게 반드시 연락을 남겨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출석부에는 이름이 올라 있지만 휴학을 했거나 수강을 포기한 학생들도 몇 명 있음을 파악했다. 이렇게까지 챙겼어도 빠진 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단톡방을 보지 않아 이제야 연락한다며 수업 이틀 전에 연락해 온 학생도 한 명 있었다. 그에게 제반 안내문을 다시 보내주었다. 시업 전 과제 제출기한인 3월 3일 일요일에는 전체 학생들에게 오늘이 과제 제출 마지막 날임을 알리는 단톡문자를 보냈다.
3월 3일 밤 11시, 확인해 보니 끝내 3명이 제출하지 않았다. 시업 전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은 한 학기를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많아 걱정되었다. 이 세 명에게 밤 11시에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다시 살피니 2명이 몇 분 늦게 제출했다. 1명은 제출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첫 주 수업을 마친 후 다음 날까지 제출하도록 다시 연락을 취해 답을 받았다. 이들이 교사로서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자세를 갖추고, 그러한 삶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개학 전날 밤까지 마지막 점검을 하고 여느 때처럼 자정 무렵에 연구실을 나섰다. 화요일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있는 과 학생들에게는 3월 4일 월요일 밤 8시에 단톡방을 통해 문자를 보냈다.
한 학생이 몸살감기가 심해 병원 응급실을 가야 해서 첫 수업 참석이 어렵다는 문자를 강의 날 아침 일찍 보내왔다. 오후에 다른 과 수업에라도 참석하라고 했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한 학생은 일찍 출발했는데 평소보다 교통체증이 더 심해 조금 늦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9시 정각에 미소 교환 출석법을 활용해 출석을 불렀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이번 학기 수업에 임하는 각오, 학기를 마친 후 어떤 모습의 예비교사로 성장해 있고 싶은지 등에 대해 30초 이내로 이야기하게 했다. 대표에게 동영상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게 했다.
휴식 후 둘째 시간 시작 전에 단체사진도 찍어 공유했다. 강의계획 설명, 시업 전 과제 활용한 조별 토론, 스피드퀴즈, 관련 동영상 시청 등을 하며 세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다음 수업을 위한 여러 개의 과제를 안내해 주었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 수업 소감을 2분 내외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탑재하는 것이다.
강의 시작 전부터 시간·노력을 투자하며 소통하는 이유
요새 학생들은 재미있는 인터넷 게임,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에 있는 다양한 동영상, 기타 재미있는 많은 활동 등 강한 외부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 필수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굳이 강의 시작 전부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지속적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이유는 수강하는 과목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학생들이 첫 수업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려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시켜야 한다.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부과된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려면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첫 수업을 충실하게 운영하지 않으면서 다음 수업부터 강하게 진행하려고 하면, 저항이 심해 원래 계획대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경험에 비춰볼 때 강의 시작 전 2주 동안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한 학기 동안 수십 배의 시간 절약과 몇 배의 목표 달성으로 돌아왔다. 강의 시작 2주 전부터 쏟는 시간과 노력은 투자 효과를 따져볼 때 충분한 가치가 있다. 혹자는 모든 교수가 강의 시작 전부터 그렇게 괴롭히면 학생들이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많은 교수가 그리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러한 걱정은 기우이다.
몇 명의 교수라도 이러한 시도를 하면 학생들의 학기 중 부담은 오히려 줄어든다. 학기 시작 전에 학생들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반영하여, 교수 재량으로 봄 휴가 주일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시간을 다른 과목 학습에 투자할 수 있다.
첫 주부터 시작해서 꼼꼼한 계획하에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성실한 태도로 학습에 임하도록 훈련하면 다음 학기부터 이들의 예비교사로서의 태도·생활습관·학습하는 자세가 바뀐다. 내 수업을 들은 과 학생과 그렇지 않은 과 학생들의 수업자세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동료교수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교직에 근무하는 제자들도 동료교사들과 이야기하다가 내 수업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히 아쉬워하더라는 이야기를 내게 전하곤 했다. 물론 내 앞에서 하는 입에 발린 소리였으리라.
30여 년간 해왔던 강의의 내용과 수업방식을 마지막 해까지도 보완해 가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워낼 초등 예비교사들이 소명감과 실력, 그리고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학교 현장을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를 지켜왔다. 내 문화유전자를 전파하는 마지막 수업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어떤 학생의 첫 수업 수강 소감이 내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