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6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9년이 되는 날이다.
불멸(不滅)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그는 바로 가객(歌客)' 김광석(1964~1996)이다.
대학로는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에서 혜화동 로터리, 동성고등학교 인근까지의 큰 대로를 말한다. 대학로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었고 그 때부터 연극, 뮤지컬 등의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지금의 대학로가 완성되었다. 대학로 주변에는 낙산공원, 서울한양도성, 창경궁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충무로가 영화의 성지라면 대학로는 연극의 ‘메카’이다. 필자의 학창 시절이었던 1980~ 90년대 무렵, 토요일 오후가 되면 대학로에는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서툴지만 예쁘게 꾸민 젊은이들의 표정이 밝았고 약간씩은 들떠 있었다. 헐렁한 청바지에 어깨가 꽉 끼는 청자켓, 서툰 화장에 한껏 치장한 옷차림과 다소 촌스러운 헤어스타일, 그래도 마냥 좋기만 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1980년대 후반 무렵의 주말이면 대학로는 ‘차 없는 거리’ 로 지정되어 아예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고 도보로만 다닐 수 있었다. 당시 마로니에 공원에는 지금은 ‘버스킹’이라 일컫는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었다. 통기타 하나만 들고 거의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는 이름모를 가수의 공연이었지만 그냥 멍하니 선 채 그 공연에 심취했었다. 마로니에 나무는 그때에도 공원 한 끝자락에 조용히 선채로 우리를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학로에는 수많은 극장에서 하루종일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명소가 되어버린 샘터 파랑새극장(현 파랑새극장), 학전, 마당 세실극장, 바탕골소극장 등 유명한 공연장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자리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 생각난 2025년의 1월, 잔뜩 흐린 토요일 오후
대학로 인근 방송통신대학교 주차장은 만차(滿車)였다. 멋모르고 주차하려 기다렸는데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주차된 차가 나와야 비로서 입장이 가능했다. 30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간신히 주차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차량 번호를 이야기하면 주차비의 30퍼센트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할인되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나 할까? 사실 대학로 주변에는 좁디좁은 길 사이로 작은 유료주차장이 꽤 있다. 하지만 주차비가 비싸고 진입이 어렵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이용할 것을 당부한다.
1996년 겨울 어느 날, 텔레비전을 통해 갑작스레 들려온 가수 故 김광석의 사망 소식, 30살이 갓 넘은 젊은 나이, 그의 죽음은 필자를 포함해 그의 노래를 신봉하던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대학 4학년 때였던 1992년 학교 축제에서 실제로 보았던 가수 김광석!
낡은 청바지에 기타 하나만 든 채 작은 무대를 조용히 압도하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리움을 담아 하늘에 있는 이 시대 진정한 가객(歌客)에게 보낸 뜨거운 박수~
‘바람으로의 여행’ 이 뮤지컬은 그의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노래를 다시는 듣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지우려 만들어진 것일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공연은 2012년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에서 시작하여 올해로서 벌써 12년째 계속 진행되고 있다.
1994년, 한 대학교의 노래 동아리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이풍세’는 신입생임에도 뛰어난 보컬 실력으로 이 동아리의 메인보컬이 된다. 이후 멤버들은 각자 인생의 고단함에 빠지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10년이 지나서 재회하게 된다.
이 뮤지컬에는 격동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사회상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의 절대가치는 결국 김광석의 노래다. 그의 노래 20여 곡이 스토리와 맞물려 적절히 연주된다. 사실 필자는 이 뮤지컬을 다섯번째 보았다. 공연 때마다 조금씩 각색되고 또 배우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게도 이끌어진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뮤지컬을 보러온 관객의 최종 목적은 김광석의 노래를 듣기 위함이다. 모든 것이 그의 삶과 노래로 귀결된다.
그의 노래는 우리 시대 기성세대들에게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 삶의 장면들이 전환될 때면 항상 그의 노래가 곁에 있었다. 스무살 시절 우리들은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입대를 했다. 서른 살이 되어 미래가 불안할 때면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그 힘든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냈고, 가을이 오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며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청춘 시절, 사랑에 지쳐 힘들 때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들으며 아픔을 달래곤 했다.
최근까지도 텔레비젼 음악 프로그램에서 수 많은 가수들의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다.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에서는 생전의 그가 콘서트 하는 모습까지 재연되고 그의 노래들이 삽입곡으로 수시로 흘러나왔다. 비단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와 음악의 아이콘이라 칭해본다. 그는 진정한 이 시대의 가객(歌客)이다.
삶의 모든 장면과 함께 했던 그의 노래,
우리의 삶 속에 그의 노래가 있었고, 그의 노래 속에 우리의 삶이 스며 있었다
다닥다닥 어깨가 붙을 정도로 좁은 소극장은 매력이 있다. 앞쪽 2열에 앉은 필자는 행운이었다. 배우의 표정과 숨소리까지 보이고 들린다. 눈 깜박거림과 작은 손동작에서도 배우의 감정이 전해진다. 손을 뻗으면 그냥 닿을 거리다. 이것이 소극장만의 특별한 장점이다. 어깨가 짜릿해지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감동의 카타르시스에 순간순간 젖어든다.
이 뮤지컬의 최고 정점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라는 노래를 함께 부를 때이다. 관객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소리 높여, 그리고 흐느끼다시피 하며 무대의 배우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이미 90년대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 일에, 그리고 힘든 삶에 지칠 대로 지친 현재의 자신이 아닌, 순수한 열정과 감성을 지녔던 20대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을것이다. 그것도 젊음의 상징인 이 대학로의 한가운데에서.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부치지 않은 편지’를 따라 부르다 목이 메어버렸다. 눈물이 흘러 적삼이 아닌 마스크를 적셨다. 창피하지도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21세기, 수많은 가수들과 작곡자, 제작자들이 최신 장비로 노래를 수없이 만들어낸다. 물론 좋은 음악들이 많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내 가슴 저 아래쪽 무언가를 이처럼 간지럽게 했던 적이 있을까. 단 한 방울이라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한 노래가 얼마나 있었을까?
필자는 그저 그와 그의 노래가 존경스럽기만 하다. 특히 함박눈 내리는 토요일 겨울밤에 듣는 그의 노래는 주옥같다. "아~"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다른 때보다도 훨씬 더 감동적이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은 초창기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저작권 등의 문제로 현재는 해당 이름으로 공연이 열리고 있다. 2025년 12월에도 대학로에서 이 공연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 공연은 연중, 전국 순회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80년~90년대를 보냈건, 보내지 않았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관람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의 노래를 한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