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상관없는 여행 욕구
중국의 장광주, 왕중젠 부부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며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출발 당시 부부의 나이는 각각 60세와 57세. 부부가 말한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져 있었다.” 일본에는 고령자와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는 전문 인력인 ‘트래블 헬퍼’가 동행하는 ‘배리어 프리 투어리즘’ 상품도 나와 있다. 3주에서 3개월까지 해외 현지에서 어학을 배우면서 문화체험과 관광에 초점을 맞추는 ‘시니어 해외유학’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2015년 tvN의 시니어 해외 배낭여행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화제를 모았다. 출연자는 배우·탤런트 이순재(1935년생), 신구(1936년생), 박근형(1940년생), 백일섭(1944년생). 노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여행 욕구까지 감퇴하는 것은 아니다.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노년에 더욱 절실할 수 있다.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1955년 5월 어느 봄날, 엠마 게이트우드(1887~1973)는 가족에게 “어디 좀 다녀올게”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자루 하나와 200달러를 갖고 길을 나섰다. 이 길은 3,300km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146일 동안 걸은 종주여행으로 이어졌다. 그는 1955년 9월 25일 캐터딘산 정상에 올라 종주를 마쳤다. 당시 게이트우드의 나이는 67세. 이로써 그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체를 혼자 걸어서 한 번에 완주한 첫 번째 여성이 됐다.
그가 완주하기 전까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사람은 6명. 모두 남성이었다. 게이트우드는 1957년에 다시 한번 80일 동안 걸었다. 1958년에는 일흔 나이에 애디론덱 산맥의 여섯 개 봉우리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남녀를 통틀어 세 차례 완주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레일을 세 번 이상 여행한 사람은 여성 8명, 남성 58명이다.
출발은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잡지에 실린 애팔래치아 트레일 기사를 보고 결심했던 것. 특히 기사의 다음 부분에 이끌렸다. “지평선 너머로 캐나다를 바라보며 캐터딘 산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그렇게 해서 저 멀리 애틀랜타의 불빛들을 호령하는 오글소프 산까지 도착한다. 보통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트레일을 즐길 수 있다.” 나중에 게이트우드는 왜 떠났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여행에서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미국의 지역신문 <템파베이타임스>에서 일하는 벤 몽고메리가 게이트우드의 이야기를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우진하 옮김, 책세상)>라는 책으로 펴냈다. 게이트우드의 여행기록·일기·편지와 관련 보도기사 등을 폭넓게 조사한 결과이다. 1950년대 당시엔 아웃도어 장비라는 것도 없었다. 갖고 나선 자루에 든 것은 약간의 먹을거리와 반창고, 옷가지가 전부였다. 표지판이 잘못돼 있고 쉼터도 방치돼 쓰러져 있기 일쑤였다.
길도 정비되지 않아 거칠기만 했다. 밤이면 고슴도치와 같이 잠을 자거나, 들개의 기척을 느끼며 뒤척이는 날도 있었다. 방울뱀도 수시로 나타났다. 침낭도 없이 한뎃잠을 잘 때는 불에 달군 돌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허리케인이 강타한 때 15km 거리를 비바람을 헤치고 걸어야 했다. 협곡물이 불어나 목숨 걸고 줄 하나에 의지해 물을 건너기도 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게이트우드는 하루 20km씩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밤늦게 발견한 집에서 하룻밤 재워 달라 부탁했더니, 집주인 아내는 허락하려 했지만, 남편은 할머니 사연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여행은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혼자 걷는 길이 고독한 것만은 아니었다. 보이스카우트 아이들과 잠시 동행하기도 했다.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과 반갑게 인사 나누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기자 메리 스노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홀로 걷는 할머니가 좋은 기삿거리라고 판단했다. 기자는 게이트우드를 여러 날 인터뷰하여 기사를 실었다. 지역신문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전국적으로 TV와 신문에 보도되었다. 취재진이 게이트우드를 따라다니는 일도 잦아졌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애팔래치아 트레일 되살리기 운동이 일어났다. 게이트우드는 오늘날 ‘애팔래치아의 여왕’으로 일컬어진다. 잊히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애팔래치아 도보여행 코스를 되살려내는 역할까지 한 것. 앞서 말한 책의 원서 제목도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구한 여성’이다. 게이트우드의 딸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한 모든 일들에 대해 자긍심이 강했어요. 어머니는 당신이 한 일이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사람들은 결국 어머니를 기억하게 됐지요.”
인생은 곧 여행, 지금은 평생여행 시대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 시절의 여행, 친구들과 떠나는 수학여행, 청년기에 많이 떠나는 배낭여행, 달콤한 신혼여행, 동호회나 친목모임에서 떠나는 관광여행, 은퇴 무렵 또는 직후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떠나는 은퇴여행, 자식들과 함께하는 효도여행, 노년에 떠나는 실버여행…. 여행은 생애주기와 궤를 같이한다.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인생의 각 단계에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미국 역사상 큰 재난의 해로 기록된 1955년의 허리케인은 트레일도 강타했다. 게이트우드는 15km 넘는 거리를 비바람을 헤치고 걸었다. 물이 불어난 12m 협곡을 건너야 했을 때는 산에서 만난 두 젊은이가 곁에 있었다. 세 사람은 줄로 몸을 연결한 채 물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한 사람이라도 미끄러지면 모두 물살에 떠내려갈 수 있는 상황. 당시 스물두 살 청년은 55년 후 저자와 만난 자리에서, 일흔일곱 살이 된 지금도 꿈속에서 그날로 돌아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