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6 (목)

  • 맑음동두천 1.8℃
  • 구름조금강릉 3.1℃
  • 맑음서울 2.1℃
  • 흐림대전 3.4℃
  • 구름많음대구 4.7℃
  • 구름많음울산 5.5℃
  • 구름많음광주 5.0℃
  • 구름많음부산 6.7℃
  • 구름조금고창 2.8℃
  • 흐림제주 7.2℃
  • 맑음강화 3.2℃
  • 흐림보은 1.1℃
  • 맑음금산 4.1℃
  • 구름많음강진군 5.5℃
  • 흐림경주시 4.5℃
  • 구름많음거제 7.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라이프

[김민철의 꽃과 문학]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귀룽나무,  새잎이 꽃보다 예쁘더라

 

이른 봄 숲에서 다른 나무들이 이제 막 잎눈을 틔우거나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벌써 푸른 잎을 다 펼치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귀룽나무다. 3월 말 숲에서 거의 한여름처럼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으면 귀룽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농부들은 이 나뭇잎을 보면 농사철이 왔음을 알고 농기구를 정비했다고 한다.


귀룽나무는 다양한 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다. 3월이면 연두색 이파리를 내밀면서 숲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3월 말 서울 남산둘레길에서도 상록수를 제외하면 잎이 온전히 푸른 것은 귀룽나무가 유일했다. 이 나무는 주로 계곡가, 물이 흘러 습기가 충분한 곳에서 자란다. 키가 10∼15m까지 자라고 우람한 메인 가지에서 사방으로 줄기를 늘어뜨려 큰 우산 같은 수형을 만든다.


이렇게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드니 일단 멋있고, 여름에 참 좋다. 북한산 구기동 코스를 오르다 구기계곡 삼거리에서 승가사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아주 근사한 귀룽나무를 만날 수 있다. 마침 나무의자도 있어서 누구라도 그 그늘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가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지금까지 본 귀룽나무 중에서 가장 근사한 나무다.


귀룽나무는 서울 남산·북한산은 물론 안산·청계산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을 시계방향으로 걷다 보면 능안정 조금 못 가서 근사한 귀룽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계산에 올랐다가 의왕 청계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계곡을 따라 제법 큰 귀룽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룽나무 꽃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귀룽나무는 4~5월 또 한 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확 눈길을 끈다. 꽃차례는 밑으로 처지는 원뿔 모양이다. 열매는 둥글고 여름에 검게 익는데, 벚나무에 달리는 버찌 비슷하다. 귀룽나무는 벚나무 무리와 같은 속(Prunus)이다. 귀룽나무를 금방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꽃이 달린 꽃차례 아래쪽에 특이하게도 잎이 달린다는 것이다.

 

‘새 혓바닥 같은 연두색 잎사귀’
귀룽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구룡목(九龍木)이라는 한자 이름에서 유래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궁궐의 우리 나무>에서 ‘귀룽나무란 이름은 ‘구룡’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하얀 꽃이 피면 뭉게구름 같다고 ‘구름나무’라고 부른다. 귀룽나무의 영어 이름은 ‘버드체리’(Bird cherry)인데, 귀룽나무 열매를 새들이 특히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소설가 신경숙도 귀룽나무를 좋아한 모양이다. 수필집 <자거라 네 슬픔아>에 ‘귀룽나무 아래서’라는 글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자주 오르내리는 산길에 귀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찌 드넓은 저 산에 귀룽나무가 한 그루뿐일까. 아마 산길 여기저기에 수많은 귀룽나무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귀룽나무 한 그루’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 나무 곁을 지나고 그 나무 밑에서 쉬고 그 나무를 올려다보느라 고갤 쳐들었던 세월이 어느덧 십여 년이 되어가다 보니 그 귀룽나무를 친밀하게 느껴서다. (…중략…) 그 귀룽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초봄이다. 새 혓바닥 같은 연두색 잎사귀가 돋아있는 귀룽나무의 자태는 누가 봐도 독보적이다.


‘새 혓바닥 같은 연두색 잎사귀’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딱 초봄 귀룽나무잎 모양이다. 신경숙은 이 글에서 “사람 관계에서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이름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친밀감 정도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며 “나무의 이름이 ‘귀룽’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산에 가기가 싫다거나 산에 올랐다가도 그만 돌아가고 싶을 적이면 그 나무가 떠오르곤 했다”고 했다. 귀룽나무를 한번 알아본 후에는 신경숙처럼 이 멋진 나무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나무 심을 곳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귀룽나무를 심으려고 벼르고 있다. 먼저 귀룽나무 자리를 잡고 나머지 나무들을 주변에 배치할 생각이다. 어느 정도 습기만 확보하면 추위는 물론 음지나 공해도 잘 견딘다고 하니 정원수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고 하니 금상첨화다. 이유미 전 국립수목원장은 한 글에서 귀룽나무가 너무 빨리 크게 자라 작은 마당엔 심기가 어려울 지경이지만 너른 공원 같은 곳에는 너무도 좋은 나무인데 왜 많이 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장 게으른 나무는 대추나무
그럼 반대로 나무 중 가장 늦게 잎이 나는, 가장 게으른 나무는 무엇일까. 바로 대추나무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다 잎 나고, 꽃 다 피우고 나서야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나무다. 4월 중순이면 산수유·개나리·진달래는 물론 목련까지 꽃이 핀다. 그야말로 화란춘성(花爛春盛·꽃이 만발한 한창때의 봄)이다. 그런데 대추나무는 4월 말쯤에야, 늦으면 5월 상순에야 새잎을 내민다.

 

5월 초까지 가지가 앙상해 지난겨울에 나무가 죽지 않았나 걱정할 정도다. 그래서 옛날 부잣집에서는 게으른 나무가 있으면 하인도 게을러진다고 대추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늦장을 부리며 느긋한 대추나무가 양반 같다고 ‘양반나무’라고도 불렀다. 그래도 대추나무는 6월이 되면 새 가지가 쑥쑥 자라 금방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그 여유로움이 부러울 때도 있다.


세종시 금강수목원에 가면 귀룽나무와 대추나무를 나란히 심어 놓았다. 사진은 3월 26일 담은 것인데 백목련이 활짝 피어 있고, 귀룽나무는 잎이 다 났는데, 대추나무는 죽은 나무처럼 잎이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 수목원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와 가장 게으른 나무를 비교해 보라고 나란히 심어놓았을 것이다.

 

 

석류나무·감나무·자귀나무도 게으르다는 말을 듣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대추나무보다는 빨리 잎을 내지만, 그래도 다른 나무들이 다 잎을 내 분주하게 광합성을 할 때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가 4월 말 가까이 가서야 새잎을 내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류나무를 키우면 대추나무처럼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닌지 조바심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자귀나무도 역시 늦게 새잎을 내는 나무다. 그래서 옛날 시골에서는 ‘자귀나무 움이 트면’ 늦서리 걱정 없이 곡식을 파종했다는 말이 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