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 연수가 한창인 16일 서울교원연수원에서 만난 ‘늦깎이’ 새내기 교사들. 마흔을 바라보는 60년대 생들이지만 설레는 마음은 막 돋아난 새싹처럼 떨린다. 82년생이 주축인 411명의 연수생 중 60년대 생은 모두 5명. ‘희귀하다’는 것이 자랑스러움이면서 한편으론 쑥스러움인지 처음 알았다는 그들.
“가장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라는 강사님의 말에 손을 들 수가 없었다”는 박진교(39·수학) 교사의 말에 정선화(39·한문), 윤현지(36·국어) 교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공대 85학번으로 야학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뒤 00학번으로 편입, 20년 만에 다시 진짜 교사의 타이틀을 얻게 된 박 교사는 “야학, 학원강사, 노동운동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야학에 대한 애정이 날 교직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바늘구멍’이라는 중등, 그것도 서울의 학교에 서게 된 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지독한 의지’의 결과라는 점에선 공통점을 갖는다.
92년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윤 교사는 이후 아내로, 엄마로, 입시학원 강사로 1인 3역을 하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돈 벌며 대학원에 간 남편 뒷바라지 하고, 아이를 키우며 하는 공부가 금세 ‘내공’이 쌓일 리 없다. 2001년부터 ‘오직 교사’라는 신념으로 매년 교직의 문을 두드렸지만 연거푸 낙방했다. 80년대 학번이라 복수전공, 부전공 가산점이 전혀 없는 게 한스러웠다.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결코 포기는 없었다.
“교사보다 보수는 많이 받았지만 입시학원은 사람보다 성적만을 책임지는 곳이어서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는 그는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을 보며 내가 있을 곳은 학생들 곁이라고 늘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4전 5기’ 끝에 꿈을 이뤘다.
가정형편 때문에 85년 상고 졸업 후 신한은행에 입사했던 정 교사는 15년 직장에 사표까지 던졌다. “그 좋은 직장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포기하냐며 부모님도 만류하고 직장동료들은 미친 짓이라고까지 했다”는 그는 “교직에 도전하는 게 내 미래를 확실히 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말한다. 2001년 단국대 한문교육과에 입학, 졸업과 함께 그는 교단에서 새 출발을 한다.
사회경험으로 다져진 연륜에도 이들은 ‘아이들과의 만남’은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라고 한다. 정 교사는 “교생 시절 느낀 교실은 딱 ‘봉숭아 학당’이었어요. 좌충우돌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벌어졌는데 그 땐 교생이라 뭐든 학생 편에서 생각했죠. 하지만 이젠 내가 과연 문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라고 털어놓는다.
박 교사도 “사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교단과 학생의 문제가 선명하고 해결책도 그리 복잡해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며 “열심히 아이들과 부딪치며 어울려 보겠다는 각오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선배 교사가 들려준 ‘학급운영과 생활지도’ 연수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아주 ‘쪼금’은 세대차를 의식하게 된단다. “파워포인트 점수가 다들 10점인데 박 선생님이랑 나는 7점이더라”며 분발하자는 정 교사. 박 교사는 “아들 딸 벌인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시려고 적절히 유행어를 던지고 드라마 얘기도 곁들이시는 노 강사님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며 “사실 TV를 무척 좋아해 일부러 사지 않았는데 당장 TV부터 사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곧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은 바람에서다.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건지…. 세월의 대가를 ‘좋은 교사’로 치를 각오다.
윤 교사는 “재미있는 수업, 반기는 선생님을 기대하며 학교에 오게 하고 싶다”며 “내 인사기록카드를 학생들과 함께 흘린 땀과 눈물의 기록들로 채우고 싶다”고 소망했다. 또 정 교사는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일이 ‘발생’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한문을 통해 바른 심성을 길러주는 수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연수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늦깎이 세 교사. 꼭 하고 싶은 말을 빠뜨렸단다. “임용고시 장수생 여러분, 힘내세요, 꼭 꿈을 이루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