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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몇 년 전 5학년 담임을 맡았던 당시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을 지도했는데 학생이 화가 나서 SNS에 제 이름만 쓰지 않았을 뿐 저를 저격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심한 욕설과 함께 자살하라며 저주에 가까운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 날 다른 학생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학부모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저를 비난하는 말과 함께 고성을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손이 떨리고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은 물론이고, 그 글의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극단적인 생각이 들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약물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학교 관리자분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고, 이후 학생과 학부모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저도 사과를 받아들였고 교권보호위원회까지 진행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겪은 뒤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지도했을 행동을 보고도 ‘괜히 말했다가 또 일이 커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학생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아이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조금이라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면 말을 심하게 했나 싶어 돌아보게 됩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고, 당시 학생과도 잘 마무리했는데 왜 아직도 이런 영향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 학생들 눈치를 보면서 생활지도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전처럼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까요?
(사연자: 이승원(가명) 교사) |
여러모로 겁도 나고 조심스러운 상황인데 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다 담지 못하는 그날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몇 년 지난 일임에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교실 속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어린 학생이, 그것도 내 반의 학생이, 교사로서 또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지도를 했을 뿐인데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불만을 궁시렁대는 것도 아니고 SNS 상에 저격글을 올린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선생님 마음이 어땠을지 그 순간을 제가 몇 줄의 글로 쓴들 충분할까요.

사람마다 어떤 일들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어디선가 누가 내 욕을 했다고만 해도 사람 기분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데, 아무나 볼 수 있는 SNS에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종용하며 저격하고 저주하는 글을 여러 개 올린 것을 본 순간 정말 어떤 마음이셨을지요.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지는 않으셨을지, 손발이 떨려오지는 않았을지, 선생님이 겪으셨을 상황은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라는 말로 담기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반 아이들이 알려주었으니 그 저주같은 말들을 반 아이들도 상당수 보았을테고, 사과는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선생님을 비난하고 고성을 지르는 부모의 태도는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오죽하면 극단적인 생각까지 드셨을지요.
정신적 충격 벗어날 노력 해야
우선 그토록 충격적인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약물치료를 받으셨다는 점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여전히 선생님께 어려움이 남아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중요한 점입니다. 분명 당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사과도 받고 잘 이겨낸 듯한데 그 일이 흔적을 남겼지요. 사실 이처럼 심각한 교권침해를 겪은 뒤 사건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어도 이후 학생들과의 교류가 어색해지거나, 생활지도 상황에서 주춤거리게 되거나 이전보다 적극적인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하는 선생님들을 적지 않게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요즘 ‘교권침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만 더 걸어 들어가 보면 그날 벌어진 것은 선생님을 향한 폭력이었습니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과 부딪힌 사고도 아니고 우리 반 학생이 저지른 심각한 사이버 폭력입니다. 그 후에 학생의 부모님은 실제로 언어적 폭력을 가한 것이고요.
이를 다른 시선으로 보면 어떨까요.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당시엔 사고로 인한 충격과 상처에 대처하느라 병원도 바로 가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와 노력을 다 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유독 당시의 사고와 유사한 상황만 벌어지면 갑자기 운전이 무서워지는 상황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겪는 분들을 보면 ‘그냥 운전하면 되지 사고는 몇 년 전 일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보다 ‘사고로 인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당시에 큰 사고로 다리를 다쳐 당시에 치료를 잘 받았지만 이후에 걸을 때 보행이 편하지 않다면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재활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선생님께서 사건 당시 하셨던 많은 대처와 노력이 그 시기에 가장 적절한 행동이었다면, 이제는 어려움을 새롭게 대처하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 필요
학생들을 지도하려 하실 때 옳은 행동임에도 조심스러워지거나 주저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몇 년 전에도 잘못된 행동을 지도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목표를 ‘그 일이 벌어지기 전의 상태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 ‘아이들을 지도할 때 두려움이 없는 나’로 돌아가는 것으로 세우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나를 알아차리면서도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도는 해나갈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편안한 종류의 생활지도와 다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생활지도, 많이 두려움이 올라오는 생활지도의 영역이나 멘트, 상황들을 분류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미 잘하고 계시겠지만 편안한 종류의 지도부터 천천히 강도를 높여가 보는 것이죠. 그렇게 생활지도를 해도 대부분의 상황은 당시와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다시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학생의 삐죽대는 표정, 불만스러운 눈초리 등을 조금씩 감당하고 대처하며 ‘내가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와 같은 경험 역시 쌓여야 합니다.
주변에 적극 도움 요청하기
그 다음으로 현재 상황에서 선생님도 모르게 올라오는 긴장감이나 두려움, 걱정들에 대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도 권유드립니다. 당시엔 약물치료와 함께 극단적인 생각들을 멈추도록 1차적 대처를 했다면, 이제는 여전히 생활지도 상황에서 올라오는 긴장감, 지레 드는 걱정들, 학생지도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들, 그리고 비록 당시 사과는 받았지만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을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의 상처들. 몸과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을 이런 흔적들을 전문가와 함께 돌봐주는 시간도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그 상황에서 혼자 버티지 않고 학교 관리자분께 도움을 청하셨던 행동이 정말 좋은 대처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관리자분께서 선생님 곁에서 실제로 함께 해주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경험을 해보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이후에도 혹여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함께 해주실 것임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만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매번 학생들이 기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지적받는 순간의 당혹스러움이나 분노, 좌절감 등을 적절하지 않은 형태로 표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그런 불편감과 좌절감도 경험해 보고 그런 부정적 감정을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학생에게는 매우 중요한 교육입니다.
학생을 지도했을 때 아이가 잠시 불편해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 모두 교사가 책임지고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지가 아니라 그 순간의 생활지도가 필요했는지, 그 방법이 적절했는지일 것입니다. 비록 몇 년 전 그 학생이 보인 행동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고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 경험이 앞으로 만나게 될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멀리서 선생님을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