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교육계에서는 지난 9월 초 실시된 전국영어등급시험(PETS)에 초․중학생들이 대거 응시한 사태를 두고 분석이 한창이다.
전국영어등급시험(PETS)은 중국정부가 성인들의 영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지난 1999년부터 실시하게 된 것으로 PETS 1급B, 1급, 2급, 3급, 4급 등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PETS 1급 B는 영어 초보자들에 적합한 수준, 1급은 초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택시기사, 경비, 교통경찰 등이 자신들의 업무분야에서 외국인과 교류할 수 있는 수준, 2급은 중하급으로 전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수준으로 호텔직원, 일반은행 직원들이 외국인과 교류할 수 있는 수준, 3급은 중간급으로 일반 대학의 비영어전공자들의 졸업 가능 수준, 4급은 중상급으로 일반 대학의 석사과정 비영어전공자들에 맞는 수준으로 일반 전문기술자, 연구원, 기업간부 등에게 적합하도록 난이도가 맞춰져 있다. 때문에 중국 일반 대학생들의 경우 졸업 전에 PETS 4급을 따기 위해 영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는 이러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등급시험(PETS)에 중학생, 심지어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까지 참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10일 베이징시의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치러진 2005년 하반기 영어등급시험의 경우 1000여명의 응시생 가운데 95% 이상이 초․중학교 학생들로 그중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베이징시 하이디엔 아동 외국어 학교의 경우 2000여명의 학생들 중 500여명의 중학생들과 초등학생 중 60% 이상이 이번 PETS 1급과 PETS 2급에 응시하는 등 전국적으로 PETS 응시자의 연령 하락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 시험이 처음 실시되던 1999년 당시 PETS 1급에 보통 중학생들이 응시하던 것이 2001년, 2002년 들어 초등학교 5-6학년으로 응시 연령이 낮아지다가 금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이 대거 PETS 1급에 응시하고 있으며, 일부 3-4학년 학생들은 전문대학 입학수준인 PETS 2급에도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교육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영어등급시험에 초등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중학교 입시에서 찾고 있다. 중국에서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을 포함한 9년은 의무교육기간이다.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원칙적으로 입시는 없고 대부분이 ‘근거리 배정원칙’에 의하여 집 근처의 중학교에 배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로 우리의 명문학교에 해당하는 중점중학은 입학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입학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중점학교의 경우 대학진학에 유리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 중 일부는 자기 자녀를 중점학교에 보내기 위해 조기영어교육에 힘쓰게 된다. 게다가 많은 수의 중점중학에서는 우수학생 선발이라는 핑계로 입학시험 등록 시 PETS 2급의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중국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어린 학생들의 영어등급시험 참여 현상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국가의 발전이 빨라지고 영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초등학교의 영어교육이 수준이나 속도에서 너무 뒤쳐지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비를 들여서라도 영어공부를 시켜야 하며, 또한 학생들은 영어등급시험에 참가함으로서 영어실력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반대하는 쪽에서는 아이들이 영어과외수업을 위해 주말과 휴일도 없이 바쁘게 생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자격증 획득만을 위한 영어공부는 영어실력 향상에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교육전문가들 역시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학교수준을 뛰어넘는 영어교육은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어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로 어린 학생들의 영어등급시험 열기를 비판하고 있다.
한동안 중국에서는 수학 올림피아드가 광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수학 올림피아드는 우리나라의 수학경시대회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학생들은 이 시험을 통하여 국가가 공인하는 일정한 등급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전역의 초등학생들이 수학 올림피아드의 열기 속으로 빠져든 적이 있었다. 이 수학 올림피아드 열풍의 배경에도 중점중학 입시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에 중국 정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수학 올림피아드의 금지와 이를 중학시험에 연계시키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으로 수학 올림피아드 열기가 다소 주춤해지자 이번엔 영어자격시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년 들어 베이징시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수학 올림피아드 실시 금지, 학교를 임대한 사설 교육의 금지, 학과경시대회 및 그 증서를 통한 학생선발금지 등의 ‘7불정책(七不許)’을 내세우며 초중학교에서의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 정책이 큰 효과를 보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같은 조기영어교육 열풍의 해법과 관련하여 중국 교육계 일각에서는 그 어떠한 정부차원의 강제적인 조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입시와 관련된 수학이나 영어교육의 과열이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고, 교육자원의 희소성과 자원획득 기회의 희소성이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정부로서는 학생들에게 학습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조치도 필요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인 경쟁에 대한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의 영어등급시험 응시 과열과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교육체제의 개혁과 더불어 사회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게 뜻있는 중국 교육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