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집단 급식사고로 인해 일선 학교의 급식 중단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편도 가중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바쁜 아침 시간에 자녀 도시락 준비에 매달리고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은 편의점 등에서 빵ㆍ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등 고충을 겪고 있.
특히 저소득층 학생의 경우 집안 형평이 알려질까봐 점심을 아예 굶는 경우도 있어 교사나 친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일부 학부모들이 결식학생을 위해 도시락을 싸 주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교사들이 점심을 제공하는 등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있다.
◇ 빵.우유로 때워…부모는 '도시락 배달' = 급식중단이 1주일째 계속되면서 학생들은 학교 부근 편의점 등을 찾아 빵과 우유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부모들은 바쁜 아침 시간에 자녀의 도시락까지 준비하느라 고통을 겪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도시락 대신 빵과 우유, 김밥, 컵라면 등을 찾는가 하면 일부 부모는 학교로 찾아가 도시락을 자녀에게 직접 건네주기도 한다.
점심시간을 30분 앞두고 교문 밖에서 서성거린 한양대 부속중 3학년 박모(15)군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나오다가 도시락을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도시락을 갖다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학생들의 경우 도시락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빵이나 우유 등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친구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한다.
덕수중 3학년 이모(15)양은 "어머니가 나 때문에 돈 벌러 다니시는데 도시락 못 싸주시는 거는 당연히 이해한다. 등교할 때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와서 먹었고 친구들 도시락도 나눠 먹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 1학년 신모(13)양은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신다고 하셨지만 갖고 오는게 귀찮고 어머니 고생시는 게 싫어서 컵라면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한양대 부속중 2학년 유모(14)양은 "학급에 5∼6명씩은 김밥과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어 포장 용기 등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며 "학교에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지고 가야 해 이중으로 불편하다"고 말했다.
학교 주변 편의점들은 등교 전에 김밥과 컵라면을 사 가려는 학생들이 아침부터 몰리자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학교 인근 식당들은 점심을 해결하려는 학생과 교직원들로 붐볐다.
급식이 중단된 한양대 부속중학교 부근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는 김모(28)씨는 "점심 시간에 학교측이 외출을 못하게 하고 있어 아침에 등교할 때 먹을 것을 사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인근 식당 음식을 먹고 탈이 날 수도 있어 마음놓고 외부출입을 시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통제 이유를 설명했다.
◇ 결식학생에 '온정' 줄이어 = 학생 700여명 중 87명이 유사 식중독 증세를 보였던 덕수중학교는 급식이 중단된 23일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결식 학생 80여명을 인근 식당으로 데려가 점심을 제공하는 등 배려하고 있다.
이 학교 일부 학부모들은 "도시락을 싸는 김에 여러 개를 만들테니 결식학생에게 전달해 달라"고 학교측에 요청하기도 한다고 학교측은 전했다.
학교측은 그러나 결식학생들의 자존심 등을 고려해 29일부터는 직접 점심을 제공하지 않고 식사가 가능한 상품권을 대신 지급키로 했다.
이 학교 이영주 교장은 "일부 학생들이 '쟤들은 왜 선생님이 밥 사주는 거야?'라고 수근거리는 바람에 결식 학생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직접 밥을 사 주는 대신 1인당 3천원짜리 농협 상품권을 지급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농협 상품권은 농협하나로마트에서만 사용할 수밖에 없어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에서 도시락이나 김밥을 배달시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서울 D중학교 등 일부 학교의 경우 자신의 처지가 탄로날까봐 도시락 수령을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S여중은 이런 점을 우려해 특별활동실에서 조용히 나눠주고 있으나 이마저 거부하는 학생도 있다.
시험감독을 하러 딸이 다니는 한양대 부속중학교를 찾은 학부모 이모(45)씨는 "딸 얘기로는 주변에 생활보호대상자 학생들이 꽤 사는 것 같은데 남의 일이긴 하지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급식사태 이후 무료급식지원 대상이 된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의 자녀들은 서울에만 44개교 3천511명에 달한다.
◇ "도시락이 더 좋아"…부모 대신 직접 마련도 = 그동안 불만족스러웠던 학교 급식만 먹다가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싸 오니 오히려 좋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덕수중 1학년 정모(13)양은 "급식할 때는 반찬도 마음에 안들고 맛도 없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싸주시니까 정말 좋다. 지하 식당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교실에 둘러앉아 먹으니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홍모(13)군은 "급식을 할 때는 전교생이 식당을 돌아가면서 이용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름이 되면 후텁지근해서 짜증이 났었다"며 "도시락을 싸오니까 기다릴 필요가 없어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바쁜 부모 대신 자기 스스로 도시락을 준비한다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덕수중 2학년 이모(14)양은 "어머니가 아침 일찍 나가셔서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야 한다"며 "어제는 떡볶이를 해 와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는데 오늘은 늦잠을 자서 숟가락만 가져와 친구들 도시락을 얻어먹었다"고 말했다.
장모(13)군은 "직장 다니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직접 김치볶음과 계란후라이로 도시락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