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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학교 영어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초등 영어 절대시간 부족...고교 영어는 수능 위주
"일부 학과 대입 영어 논술.면접 '준본고사' 허용해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다가 논문 의혹으로 13일 만에 낙마한 김병준(金秉俊) 전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영어 교육의 혁신을 주창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달 27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영어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는 것과 직결된다"면서 "교육부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영어교육을 혁신시켜 사교육 부담을 경감시키고 학생들의 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한 방안을 수립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7일 열린 이임식에서도 "전 국민의 영어 능력 향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미처 펼치지 못한 영어교육 혁신정책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영어 공교육이 어떤 상황이기에 교육 담당 최고 관리가 취임 일성으로, 그리고 이임식에서까지 영어 교육의 혁신을 언급했을까.

◇ 초등학교 = 현재 초등 영어교육은 7차교육과정이 시작된 1997년부터 3ㆍ4학년은 주당 1시간씩, 5ㆍ6학년은 주당 2시간씩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초등 영어는 회화와 놀이 중심 즉, 음성언어 중심으로 실시된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1ㆍ2학년들에게도 시범적으로 영어교육이 실시된다. 학교 수가 많은 서울, 경기는 4개교씩, 나머지 14개 시ㆍ도는 3개교씩 시범학교로 선정됐으며 이들 학교는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2년 간 1ㆍ2학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아직 한글의 언어구조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는 데는 찬반논란이 존재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입장은 현실적으로 이미 초등 1ㆍ2학년생의 74%가 영어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에게 공교육에서 영어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보고서는 비영어권 23개국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국가들이 초등학교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등학교 영어 교육이 효율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초등영어는 집중도와 절대적 영어 수업시간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병만 전북대교수(영어교육학)는 "언어 습득은 간헐적인 입력보다는 집중적인 노출 환경이 중요하다"면서 "현 초등학교 3ㆍ4학년의 주당 1시간, 초등학교 5ㆍ6학년 주당 2시간의 교육과정 편제는 이런 점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 3-6학년에 이뤄지는 영어교육의 총 시간 수를 늘리던가 아니면 5-6학년으로 상향 조정해 집중 이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익훈어학원의 이 원장은 "초등학생이 3학년부터 6학년까지 4년 간 배우는 영어 수업 시간은 모두 합쳐 136시간"이라면서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듣기시간만 4천 시간 이상인데 절대적인 수업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을 최소한 현재의 3배 이상은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중ㆍ고등학교 = 지난 1997년 7차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모든 영어 수업은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교과서들은 회화 부분을 강화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의사소통 중심 영어보다는 독해 위주로 구성된 교과서 1종이 심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 교과서는 학교별 채택률도 중간급으로 올라갈 만큼 인기가 높았다. 한 일선교사는 "이 교과서는 가르치기 쉽고, 시험에 내기 쉽고, 수업하기도 쉬워 선생님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영어회화 부분이 포함돼 있는 다른 교과서를 공부할 때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회화를 모두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 특히 고등학교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영어회화 부분은 수능에도 별 상관이 없고 가르치기도 귀찮아 대부분 그냥 건너뛰고 독해 부분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다.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교과서의 말하기 부분은 초보적 영어회화 중심으로 돼 있는 데다 수능 듣기평가에도 별 도움이 안돼 선생님들이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고등학교에서의 영어 교육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의사소통 보다는 수능시험에 대비한 문제풀이가 강조된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중학교부터는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 언어 4기능과 영미권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게 돼 있다. 그러나 4기능 중 읽기와 듣기의 경우 교육이 용이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여전히 가르치기도 어렵고 학생들이 혼자 공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얘기다.

교육부는 교사들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권장하고 시험에도 언어 4기능을 골고루 측정하는 문제를 내라는 지침을 주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고등학교에서는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대입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문제 풀이 위주의 영어교육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 숙명여고의 김경환(43) 교사는 "1학년만 해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어 문제풀이가 시급한 고3학생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이 짜증을 낸다"면서 "문제에서 해답이 도출되는 과정을 빨리빨리 설명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과정을 영어로 설명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능시험에 맞춘 영어 공부로는 사회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얘기다. 김교사는 "학생들이 고교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은 대학에 가는 것"이라면서 "수능과 내신만 갖고 대학에 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기 맞춰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굳이 말하기 공부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면서 "지금 고교에서 실용영어 교육은 과도기적 단계"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일선 교사들에게 서술형 영어 답안이 나오는 문제를 40% 출제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서술형 답안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데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서울 S여고의 박모 교사는 "교사들 입장에서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시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다 엄밀히 채점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실제로는 서술형 문제 대신 단답형 문제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신이다. 내신 때문에 교사들이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게 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교 교사는 "한 학년에 영어과목 교사가 3-4명인데 모든 교사들이 똑같은 것을 가르친 뒤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야 한다"면서 "자기 나름대로 의욕과 개성을 살려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돼 있으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으로 가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 수능시험 = 수능시험 자체도 문제다.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가 아직도 경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능 영어시험에서 읽고 답하는 문제는 50문제 중 33문제, 듣고 답하는 문제는 17문제다. 전문가들은 수능시험에서 듣기 문항의 비중을 늘려야 하며 말하기 능력도 어떤 식으로든 평가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영어교육학회장을 역임한 김충배 전 고려대교수(영어학)는 "수능시험에 말하기를 어떤 식으로든 집어넣어야 하며 글로 쓰는 영작 문제도 포함돼야 한다"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우면 간접적인 테스트라도 해야 하며 그것이 안되고서는 한국인들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한국영어교육학회장을 맡았던 전병만 교수도 "수능시험의 듣기 문항이 40% 정도로 늘어나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이도와 관련해 "교육부가 수능 영어시험을 EBS 교재에서 일부 내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수능시험이 너무 쉬워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교육비 경감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시험문제를 너무 쉽게 출제하면 안 되고 (대학에서의 수학능력 측정 등을 고려할 때) 전체적으로 난이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교학과나 통상 관련 학과, 영어영문학과 등 영어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학과의 경우 신입생 모집과정에서 영어 논술, 영어 인터뷰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꼭 필요한 학과에는 (신입생 모집의) 제도적 장치를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본고사까지는 아니라도 면접이나 쓰기 시험을 보충한 '준 본고사'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묘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는 의사소통 중심으로 교육하는데 중고교는 수능에 맞춘 듣기와 독해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다"면서 "입시에 교육이 맞춰지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의 균형이 깨진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기와 쓰기의 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점은 알지만 한꺼번에 60만 명의 말하기와 쓰기를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만의 경우 영어 시험에 영작문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15만 명의 대입 영어시험 답안지를 영어교사 800명이 8일간 채점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해 수능에서 말하기와 쓰기를 테스트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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