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명예퇴임을 앞둔 부산 좌천초등교 박원돈(62) 교장. 그는 교직생활 43년을 마감하며 기념식 대신 자신이 직접 쓴 희곡작품을 연극무대에 올렸다. "퇴임식은 너무 쓸쓸하고 쑥스럽습니다. 평생 아이들과 연극을 하며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무대에서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박 교장은 자신이 직접 쓴 작품 `자식이 뭔지'를 12, 13일 부산시민회관 소강당에서 3차례 무료 상연한다. 남아선호사상에 젖어있는 가난한 홀아버지와 남매가 부자가 돼 나타난 어머니와 겪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연극계 후배들과 제자들의 제의를 받아 들여 이뤄진 이번 공연을 위해 박 교장은 퇴직금을 선뜻 내놨고 수영구 연극회와 극단 `액터스' 후배들은 무료로 출연에 나섰다. 이번에는 몇 장면이지만 박 교장도 배역을 맡았다. 그는 "초등생 이후 처음 하는 연기라 무척 떨리지만 동료·후배 교사, 학부모,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없이 기쁘다"고 말한다.
그에게 연극은 교직을 지탱해준 커다란 디딤돌이었다. 58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해 19세의 나이로 경남 함안초등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부터 학예회마다 연극을 올리고 동극반을 지도해 온 박 교장. 그는 여느 교사처럼 백설공주니 이솝이야기 같은 외국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싫었다. 우리 아이들이 늘상 겪고 있는 생활사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꾸미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교훈을 얻기를 바랐다. 그래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5∼20분 짜리 동극을 올리는 일도 지식과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힘든 일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쓴 대본을 말하고 연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박 교장의 희곡 쓰기는 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까치설날의 엄마 마중'이 아동극부분에 당선되면서 주위의 인정을 받았고 79년에는 전국아동극경연대회에 `겨울꽃'이란 작품으로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고 또 4차 교육과정 때는 교과서에 그의 동극 `날지 못하는 백조'가 실리기도 했다.
84년에는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한 청소년 문예작품 공모에 `차가운 양지'라는 시나리오를 써내 당선됐고 86년에는 부산연극제에서 `을숙도'라는 작품으로 희곡상을 받아 성인극과도 인연을 맺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웃 학교의 부탁으로 희곡을 써준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쓴 희곡이 100여 편. 박 교장은 지금까지 모두 6권의 연극대본집을 출간했다.
퇴임 후에도 박 교장은 희곡을 계속 쓸 생각이다. 92년부터 매년 `수영 구민을 위한 연극공연'에 희곡을 써 온 그는 올 가을 무대에 올릴 모노드라마를 집필 중이다. 또 동극을 올리려는 교사가 있다면 언제라도 희곡을 써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동극뿐만 아니라 교과 학습 시간에도 간단한 역할극을 해 보는 일이 아이들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며 "후배교사들이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교직자로서 마지막 열정을 무대에서 꽃 피운 박 교장. 그는 "자녀와 제자의 교육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