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서울시교육감 선거전이 유인종 현 교육감에게 재선의 영광을 안겨주며 끝났다. 지리하다고 한 것은 서울의 선거전이 공식 선거운동 기간보다 훨씬 전에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유교육감이 제2대 민선교육감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선거전에 불이 붙었다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 96년 8월 유교육감은 25명의 교육위원 가운데 13표를 얻어 당선됐다. 소위 반유(反劉) 정서를 가진 측에서는 당시 교육위원이었던 유교육감이 자신에게 던진 한 표가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과 대학교수 출신으로서 보통교육 경험이 미약하다는 불신감을 지우지 않았다. 그들의 반유정서는 특정지역 출신의 인사특혜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고착화됐다. 반유라인의 이탈자도 생겼다.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혹은 이러저러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떠난 것이다. 물론 저마다 가진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순수하게 발탁된 경우도 많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서 4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본격적인 선거전을 맞았다. 선거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술판, 그 자리에 동문자격으로 동향자격으로 같이 근무한 이력이 있다는 자격으로 참석한 유권자들의 주가는 높아만 갔다. 냉정한 판단은 이미 줄 선 자들의 오만과 협박에 주눅들었다. 당초 선거는 유교육감 측과 유교육감 측이 아닌 측의 대결로 시작됐으나 각 후보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과 자신이 아닌 측의 싸움으로 몰아갔다. 연합은 멀어지고 나중에는 기탁금이나 찾고 보자, 체면치레나 하자는 식이 돼 버렸다. 유교육감의 재선가도에 파란신호가 켜진 것이다. 선거는 그렇게 끝났다. 피아(彼我)는 없어졌고 모두가 이긴 자의 편이 됐다. 어느 후보자 측에서 뛰던 한 인사는 유교육감 당선 직후 교육감실을 찾았다. 밖에까지 들리는 웃음소리. 아마도 그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을 것이다. 유교육감의 당선을 진심으로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시 선거는 아름답지 못했고 유교육감은 옥석을 가려야 하는 또다른 부담만 떠 안았다. /이낙진 leenj@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