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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4) 삼국 간에 말이 통했을까?

오늘날 남・북한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언어통일 정책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즈음 TV에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많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질문 가운데 삼국 사람들 간에 말이 통했느냐 입니다.

정답부터 말하면 고구려와 백제 지배층의 언어는 같았으며, 백제 하층민의 언어와 신라의 언어 또한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삼국 모두 언어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문법이나 글자로 만드는 방법이 같았다. 다만 일부 단어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구려와 백제 지배층의 언어가 한 뿌리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으로 추측할 수 있다.

먼저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재위:413~491)편에는 백제 사람으로 고구려에 항복한 만년과 걸루라는 장수가 나오는데, 이 두 장수는 항복한 즉시 대모달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대모달은 고구려의 무관으로서는 최고 사령관에 해당하는 관리로 대당주라 부르기도 하였다. 만일 이 두 장수의 모국어인 백제어가 고구려어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면 항복하자마자 백제인으로 고구려 군사들을 이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 편을 보면 ‘도림은 죄를 짓고 도망쳐 온 것처럼 거짓으로 말하고 백제로 몰래 들어왔다.’는 내용이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도림이 백제로 몰래 들어오기 전에 오랫동안 백제어를 배워야 했는데,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실로 볼 때, 백제의 지배층은 물론이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하층민까지도 고구려와 말을 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백제의 지배층은 고구려와 같은 부여 계통이므로 말이 고구려와 비슷했을 것이며, 점차 백성들까지도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지배층의 말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제 하층민의 말과 신라에서 사용하는 말이 같았다는 것은,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로 알려진 ‘서동요’를 보면 알 수 있다. 서동요는 백제 무왕(재위:600~641)이 임금에 오르기 전에 신라의 서라벌에 퍼뜨린 향가로, 백제 사람으로 신라의 노래인 향가를 지어 부른 것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고구려와 신라 간에는 백성들이 고구려와 백제 간에, 또는 신라와 백제처럼 활발히 오고가질 않았다. 단어에도 약간 차이가 있어 ‘산(山)’을 신라-백제에서는 ‘모리’, 고구려에서는 ‘달’로 발음했고, ‘바다’는 신라에서는 ‘바’, 고구려에서는 ‘나미’로 말했다.

어쨌든 삼국 간에 사용하는 말이 오늘날의 남한과 북한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삼국 사이에 쓰는 말에 다른 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어통일 정책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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