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09.13 (금)

  • 흐림동두천 24.6℃
  • 흐림강릉 23.3℃
  • 흐림서울 25.7℃
  • 구름많음대전 26.4℃
  • 박무대구 28.2℃
  • 맑음울산 28.7℃
  • 맑음광주 29.1℃
  • 맑음부산 30.6℃
  • 맑음고창 29.1℃
  • 맑음제주 30.0℃
  • 흐림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5.3℃
  • 구름많음금산 26.5℃
  • 맑음강진군 27.7℃
  • 구름조금경주시 28.9℃
  • 맑음거제 28.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양

⑨ 조선시대 의사는?

텔레비전에서 ‘허준’이나 ‘이제마’가 드라마로 방영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의사이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의사가 되었을까? 그리고 허준은 선조가 죽자 왜 귀양을 가야만 했을까? 지금부터 조선시대 의사 여행을 떠나보자.

조선시대 의료 제도는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왕실 전용 의료 기관인 전의감, 서민들을 위한 병원인 동서대비원, 약국인 혜민국을 두었다. 여기에 중앙 병원인 제생원을 하나 더 설치했다.

관원으로는 판사(정3품)·감(종3품)·소감(종4품) 등 2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관원 중 종6품 주부 이하 종9품 참봉까지는 잡과인 의과나 의과취재에 합격한 사람으로 임명하였는데, 1등 합격자는 종8품의 벼슬자리를 내렸고, 2등은 정9품, 3등은 종9품을 주었다. 이 밖에 의학교수·의학훈도는 전의감에 속해있는 50명의 의학 생도를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는 관리로, 전의감의 관리는 이들과 판관 이상의 관리 1명, 1등 합격자 1명 뿐 나머지는 모두 체아직(현재 관리가 아닌 사람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만든 벼슬자리)이었다.

조선시대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허가를 받아 혜민서(정원 30명), 전의감(정원 60명) 또는 각 지방의 관아(정원 8~16명)에 의학생으로 입학해 소정의 교육을 받았다. 의학생 중에서 실력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매년 6월과 12월에 혜민서가 예조와 협조하여 시행하는 녹시에 응시할 수 있었고 이 시험에 합격하면 나라에서 봉급을 받으며 구료, 심약, 약방 등의 의사로 임명되었다. 그 이상의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예조가 전의감과 협조하여 3년마다 시행하는 의과시험을 합격해야 했다. 이 시험은 초시에 18명, 복시에 9명을 뽑았는데, 시험은 암기 시험으로 찬도영, 의학입문 과목을, 필기시험으로는 동인경, 직지방, 본초, 경국대전, 소문, 의학정전, 동원 10서등 중국 의학책을 중심으로 치렀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정3품 당상관 이상을 어의라고 불렀으며, 당하 의관을 내의라고 불렀다. 의원은 보통 양반의 서자나 고려시대 관리의 후손들이 선택하는 직업이었으며 정3품 당상관 이상으로 임용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설혹 당상관이 된다고 하더라도 직책은 없고 벼슬의 등급(품계)만 오르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대부분 문관들의 반대 상소에 의해 어려움이 많았다. 또 왕의 병을 돌보던 주치의는 왕이 사망하는 경우에는 책임을 물었고 가끔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도 선조가 죽자, 책임을 물어 귀양보내지기도 했다. 반대로 왕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여 낳았을 때에는 벼슬이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양반 관리들의 반대로 어려움도 컸다.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