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훈 교수 논문 고조선 건국·신석기 출발 시기 제각각 "단정적 어법 지양하고 이설도 소개해야"
우리 나라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상고사 부분이 74년 국정화 이후 4차례 개정되면서 상호 모순된 내용을 싣거나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법을 남용해 혼란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국사교과서의 상고사 서술 변천과정' 논문에서 "개정된 교과서들 사이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많다"며 "앞 시기의 교과서에서 출제된 문제를 뒤의 교과서로 평가할 때 정오답이 다르거나 문제가 성립할 수 없는 등 교육과 학습평가에서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고조선과 관련해 74년 판에서는 `청동기문화가 성립하면서 우세한 부족이 대두했는데…환웅과 곰의 변신인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신화를 가지기에 이르렀다'고 하여 단군에 의한 고조선 건국의 사실성 여부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82년 판에서는 `삼국유사에는 단군 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고 서술하고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족장이었다고 적음으로써 고조선의 건국자가 단군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모든 교과서가 모호하게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기원전 2333년 건국설을 소개한 교과서조차 고조선이 성립된 것은 청동기 시대라고 명기, 고조선 건국이 기원전 10세기에나 가능한 일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해서도 82년 판까지는 대동강중심설을 취했지만 90년 판부터는 요령지역에서 대동강 지역으로 옮겨왔다는 이동설을 펴고 있다. 또 구·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시점도 교과서 발행시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구석기시대는 74년 판에서 `약3만 년 전'의 공주와 굴포의 구석기 유적과 `뻬이징인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상원의 구석기 유적 발굴을 소개하고 있는데, 79년 판에서는 약50만 년 전으로, 90년 판부터는 약70만 년 전으로 올려 잡고 있다. 또 신석기시대는 74년 판에는 기원전 3000여 년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79년 판에는 기원전 4000여 년경, 82년 판에는 기원전 6000여 년 전으로 돼 있다. 불과 8년 전 교과서에 비해 신석기 시대의 출발 시점이 3000년이나 앞당겨진 셈이다. 한사군에 대한 서술은 점차 축소되는 모양으로 변했다. 74년 판에서는 한이 고조선을 무너뜨린 후 현도, 낙랑, 진번, 임둔 등 4군을 설치했다고 적고 있으나 82년 판에서는 `한은 고조선의 일부지역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4군을 두었다'고 적음으로써 고조선 지역 모두가 식민지로 바뀐 것을 부정하고 있다. 또 90년 판부터는 4군의 명칭마저 사라지고 `고조선 일부지역에 군현을 설치했으나 토착민의 반발로 약화되다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소멸됐다'고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 정 교수는 "교과서는 추후에 이루어질 발견이나 연구를 감안해 단정적 서술을 지양하고 다수설과 다른 이설에 대한 지면도 할애해야 한다"며 "책임지지 못할 내용들을 계속 싣는다면 국사교과서는 물론 국사학계나 편사 당국도 불신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