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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복 사마귀


세월의 나이테 속에 묻힌 정감 어린 추억 하나가 있다. 우리 반에 귀숙이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귀숙이의 눈꺼풀에는 콩알만한 사마귀가 붙어 있었다. 얼굴을 대할 때마다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흉측스럽게 보일 때도 많았다. 반 아이들도 귀숙이를
보고 놀리곤 하여 자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귀숙이가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면
`사마귀'라는 별명을 뗄 수 있을까. 난 곰곰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신체 검사 날이 되었다. 때마침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산골학교까지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난 의사 선생님께 학생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위생문제에 대해서도 낱낱이 말씀드렸다. 물론 귀숙이가 사마귀 때문에 고민하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그럼 없애버리죠"라며 귀숙이의 눈꺼풀에 난 콩알만한 사마귀를 가차없이 싹둑 잘라버렸다. 그러고 나니 보기에도 한결
시원스럽고 예쁘게 보였다. 귀숙이도 이제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게 됐다며 마냥 좋아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신체 검사 결과를 기록해 학생들 편에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물론 귀숙이네로 가는 통신문에는 오늘 거둔 戰果(?)를 써
보냈다. 난 내심 `귀숙이 부모님께서도 잘한 일이라고 여기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뿌듯함에 젖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이었다. 흐뭇한 마음을 가누며 첫 시간 수업을 막 시작하려는데 느닷없이 뒷문이 우당탕 열리더니 웬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귀숙이 할머니였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왜 우리 애 복사마귀를 허락도 없이 없앴느냐"시며 아예 교실에 주저앉아 대성통곡까지 하셨다. "장치 큰 부자로 만들어 줄 복 사마귀를
떼어버렸으니 이제 우리 귀숙이 신세는 어쩌나…선생님이 책임져요"
`아! 어쩌다 이런 일이…'
나는 안절부절 자초지정을 말씀 드리고 할머니를 달래느라 비지땀을 쏟아야 했다. 억만장자의 꿈을 깨어버린 주범이 될 줄이야.
지금도 가끔 귀숙이의 사마귀를 생각하면 암담했던 그 때의 기억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양경한 대구초등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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