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감상적 통일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막상 통일국가의 이상과 방법론을 물어보면 가지각색이고 합리적인 논의에는 관심이 없는듯 해 안타깝다. 이는 통일에 대한 정부의 홍보에 문제가 있고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정부 스스로도 국가의 운명과 민족의 생사가 달린 통일 방법에 대해 여야의 합의 또는 수용하는 과정도 없이 오직 김대통령이 평소 주장해 오던 3대 통일원칙 아래 정치적 상황논리로 적절히 처방 해나가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감상적 통일 무드 한편에선 속도조절론 등이 힘을 얻고 국론 분열의 징후마저 보이고 있는데 교육부에서는 통일교육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심히 어지러울 지경이다.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는 중대사를 한 두사람의 노력으로 '결과가 잘 되면 충신이요 잘못되면 역적'이 되는 왕조시대의 패턴처럼 '잘되면 영웅이요 잘못되면 반역'이 되는 일방적인 통일 추진으로 비쳐진다면 아무리 그 안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므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의약분업 사태가 잘 증명해 주듯이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다'라는 정부의 핑계가 통일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통일 구호를 소리높여 외치기 전에 무엇보다 '통일국가의 성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정리돼 있어야 한다. 자유와 인권 존중이 보장된 민주사회,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사회 규범에 맞는 튼튼한 통일국가를 세워야 되겠다고 하는 뜨거운 열정과 원칙이 우선돼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어떤 형태로든 통일만 되면 금방 우리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환상이 '통일 대통령 김정일 영수를 받들어 통일정부를 세우자'라는 대전역 광장 삐라와 같은 것이라면 평화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쪽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 때 비판적 지식인, 야당 정치인 및 그 주변 사람들을 온갖 변태적 고문과 범죄 혐의 조작으로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위험인물로 각색해서 인권을 박탈해 온 그 만행의 기록들을 여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 하려하거나 은폐하려 하는 독재정권의 망령이 지속된다면 통일의 길 또한 멀다 할 것이다.
우리의 통일 노력 중심에는 첫째 학교에서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가치관 교육을 강화해 인권 의식이 생활 문화로 정착되도록 해야한다. 이와 함께 인권 보장의 철저한 제도화로 남쪽이 먼저 세계만방에 인권국가로 빛 날 때에 북쪽이 동참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게 되리라 본다.
둘째는 통일을 위해 남북 지도자들이 살신성인의 밑거름 역할로서 사명을 다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충실해야 되리라 본다. 남북이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폐허 속에 통일이 되어 빈곤과 독재에 또 한번 시달리게 되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셋째 '통일국가의 성격'에 대한 남북의 공통분모를 UN헌장과 국제인권법 정신에서 우선 찾아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통일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1993년 비엔나 선언 이후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도덕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국가권력에 의해 인권을 짓밟는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하는 독재정권에 대해 국제사회는 '인도적 무력개입'이라고 하는 명분으로 그들을 괴멸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 국제인권법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사례들을 보아왔다.
인권 존중과 자유의 가치가 그 어떤 법이나 국가의 개념보다 상위개념임을 남북이 이해해 이상적인 통일국가를 함께 설계할 수만 있다면 이 어찌 한반도의 기적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국가안보를 위해 강력한 국방력을 유지하고 평화통일이 될 때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외교적 노력도 중요하나 그 보다 안보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진정한 토대는 자유와 평등 및 인간의 존엄성이 강물처럼 넘치는 사회를 이루는 일이다.
우리가 인권교육 강화로 인권존중 문화를 뿌리 내리게 할 수만 있다면 이 땅에 다시는 그 어떤 유형의 독재자도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역사의 흐름이 남북 동포에게 인권 존중과 통일은 함수관계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하겠다. 손은배 전 교육부 장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