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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물이야, 소주야


지난 10월 초순. S초등교에서 열린 `열린교육 워크숍'에서 주제강사로 초빙된 한 장학관님을 수행하면서 겪은 얘기다.
S초등교는 처음 모시는 장학관님인 데다 주제강연을 하러 오시는 분이기에 한 여 선생님이 강사용 물 대접을 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여
선생님은 최대한 시원한 물을 갖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연수 직전에 행정실 냉장고에 있는 흰 패트병에서 찬물을 컵에 따라 장학관님 테이블에
갖다 놓았다.
때마침 날씨도 덥고 점심식사 후라 몹시 갈증을 느낀 장학관님은 의자에 앉자마자 컵을 들고 단숨에 물을 마셨다. 정말 시원하게.
그런데 갑자기 몹시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장학관님은 "물맛이 시원하지 않고 왜 가슴이 찌르르 하고 목이 확확 달아오르지"라며 내게 "이거
소주 아닌가"하며 맛을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맛을 보니 분명 소주였다.
평소 건강상 술을 못 하시는 분이 목이 마르던 차에 한 모금이지만 많은 양을 마셨으니 여간 괴로우신 게 아니었다. 주위가 노랗게 보인다며
걱정하시더니 단상에 섰을 때는 준비해 온 원고 글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냥 강의를 하셔야 했다.
장학관님은 "학교측의 환대에 낮술을 한 잔 했으니 실수나 안 할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하면서 난처한 기색을 애써 감추셨다.
강의 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는 죄송스런 표정으로 해명을 하셨다. 사연인즉 지난 가을운동회 때 기사들이 마시고 남은 소주를 흰 패트병에
넣었는데 그것을 알 리 없는 여 선생님이 물로 착각하고 갖다드린 것이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그 여 선생님은 교실 구석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마침 내가 복도를 지나다 발견하고 달랬더니 "정말 소주인 줄 모르고 그런
것인데 어쩌면 좋으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여 선생님을 교장실로 데리고 온 나는 장학관님께 사실 이야기를 드렸다. 그랬더니 장학관님은 오히려
"미안하게 됐다"며 "아직도 선생님처럼 순수한 분이 계시는 줄 몰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손님을 정성껏 대하고 자신도 모르고 한 행동이지만 눈물로 뉘우치는 여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해프닝이었다.
그 후 장학관님을 모시고 일선 학교에 나갈 때, 음료수가 나오면 난 농담으로 "소주인가 확인하고 드세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정갑훈 경기
이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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