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를 대비하려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보화 사업 진행 과정에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현재 각급 학교는 지난 여름 방학 이후 학내 전산망 구축을 위해여 랜 공사를 대부분 완료한 상태에 있다. 각 교실과 컴퓨터실에 인터넷 전용선을 구축해 지식 기반 정보화 사회를 위한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동안은 비용 문제로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인터넷 전용선을 이제는 무료로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저렴한 이용료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학교의 모든 컴퓨터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통신의 전용 접속 프로그램(KTGator)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모든 교사와 학생들이 한국통신의 포탈 사이트인 '한미르'에 회원 가입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회원 가입이란 곧 개인 신상 정보의 제공을 뜻한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등을 포함하는 최소 10여 가지 이상의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학내전산망이 구축되는 초기에는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가 나중에서야 `이용 조건'을 달아 놓았다. 어떤 의견 수렴을 거쳐 그렇게 일방적으로 계약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학교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회원 가입 없이 인터넷 사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재정적으로 넉넉한 학교가 전국에 몇 개나 될 것인가. 빠듯한 학교 살림을 고려하면 회원 가입 방식의 저렴한 서비스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건의 수락여부는 개별 학교의 선택인 것처럼 했으나 막대한 전용선 사용료를 물기가 어려우니 선택의 여지는 실상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정부가 비용을 줄이면서 생색을 내기 위해 한국통신의 상업적 이해 관계를 이용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몇 달 전의 한 공문에서는 `최근 학생들의 개인 정보가 교내 인터넷 무료 설치를 빙자하거나 기타 방법에 의하여 유출되어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학생의 개인 정보 유출 방지에 철저를 기하라'는 지시가 내려 왔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수백만 학생과 교사의 개인 정보가 특정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방기하고 있으니 모양새가 아주 우습다. `이미 다른 곳의 계정을 쓰고 있는데 왜 또 한미르에 가입해야 하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해 줄 말이 옹색하기 짝이 없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신년사 공약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교육정보화 추진과정의 문제점은 예산 배분과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 배부된 교단선진화 장비 지원금에는 컴퓨터와 모니터 비용만 포함되어 있고, 영상장치에 대한 비용은 빠져 있다. 영상장치는 지방교육재정의 어려움으로 예산이 부족해 내년 상반기에 배부될 예정이라 한다. 영상장치란 교실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수업을 할 경우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로서, 프로젝션 텔레비전이나 전용 모니터, LCD 프로젝터 등이 이에 속한다. 영상장치가 없는 컴퓨터 장비는 교실에서 전혀 수업에 활용할 수 없어 무용지물일 뿐이다. 컴퓨터는 잘 알다시피 활용 주기가 짧고 감가상각의 폭이 매우 큰 대표적 제품이다. 구입한 날부터 값이 떨어져서 한 두 달만 지나도 값은 떨어지고 성능은 대폭 향상되고 있는 현실이므로, 내년 상반기에 영상 장치가 보급되어 수업에 본격적으로 활용할 때가 되면 금세 낙후된 장비가 돼 버리고 말 것이다. 차라리 예산이 충분히 확보됐을 때 함께 보급하든지 아니면 예산을 배부하고 집행 기간에 유예를 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청의 담당자와 통화를 해보니 올해 배정된 예산이라 불가피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 배부된 예산을 학교가 은행에 적립했다가 영상 장치가 보급되는 내년 상반기에 함께 구매하면 훨씬 성능이 좋아진 컴퓨터를 더 저렴한 값으로 살 수 있지 않겠냐니까, 충분히 공감은 하나 난망한 일이며 이 달 말까지 집행해서 그 결과를 보고해야만 한다고 한다. 컴퓨터 장비라도 일단 보급을 하여 올해의 실적으로 과시하려는 교육부의 편의주의인가 아니면, 예산 계획 수립과 배부 및 집행 과정의 근본적인 모순인가. 책정된 예산을 꼭 집행해야 하고 당장 활용하기도 곤란한 장비를 사서 썩혀야 하다니. 12월 중에 컴퓨터의 조달 계약 사양이 상향조정되는데 학교는 영상장치가 없어 쓰지 못할, 그것도 곧 구형이 될 컴퓨터를 11월 말까지 구매해야 한다. 학교 당 몇천만 원씩 지원되는 예산인데 전국의 초중고를 이런 식으로 추진하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인가. 학습에 전혀 활용도 하지 못하면서 몇몇 학생들의 타자 연습이나 게임을 위해 일단 교실에 컴퓨터를 들여놓고 장비의 보급 비율을 높일 일인지 되묻고 싶다. 모두가 국민들의 혈세로 추진되는 일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이러한 제도적 모순부터 개선하는 일이 시급할 것이다. 교육정보화 관련 공문에는 예외 없이 '대통령 신년사 관련'이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있다.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졸속이 되고 그 과정에서 예산 낭비를 비롯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세밀히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김형봉 홍대사대 부속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