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학자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서 고귀한 문화유산인 전국의 모든 서책을 모아서 불사르고 수백의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악행을 저질렀다. 학문과 교육을 경시한 결과는 학자적 양심을 말살시켰고 문화적 단절을 초래하였으며 급기야는 자신의 제국도 멸망을 재촉했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모택동은 자신의 사회주의 혁명에 따른 이념과 사상을 강화하기 위해 15∼16세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앞장 세워 무자비한 지식계급 숙청을 단행하였으며 수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그 결과 중국의 역사발전을 적어도 3∼40년은 뒷걸음질치게 만들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이 두 가지 고대와 근세에 일어난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공통점은 지식계급을 탄압하고 학문과 교육을 경시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하거나 퇴보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집권 후 IMF를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논리를 교육개혁의 바탕으로 삼아 학교를 상품시장으로, 교원을 그 판매자로 전락시켰으며, 한평생 부도 권력도 없이 오로지 자존심과 조국근대화의 역군들을 길러낸다는 자부심으로 살아 온 40만 교육자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무모하게 정년단축을 단행했으니 이것이 한국판 분서갱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욱 통탄할 일은 문화대혁명 때 꼭두각시 노릇을 한 홍위병들이 이 땅에서도 동원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수의 급진 교원세력과 소위 참교육, 인성교육이라는 탈을 쓴 일부 단체들이 전국의 교육자들을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는데 앞장섰으니, 40만 교육자의 울분은 하늘에 닿았고 그 치욕은 결코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를 어찌 홍위병의 패악(悖惡)에 견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 정부 들어 내어놓은 교육개혁안들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줄 모르는 단견(短見)으로 거의가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육계의 구조조정을 연령의 높이에 맞춘 것부터가 큰 실수였다. 전문성이나 인성 면에서 부적격자가 있다면 연령에 관계없이 이러한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퇴출시켜야 하는데도 연령이 높으면 무조건 무능하다는 전제를 하고, 그것도 언제까지 나가면 수당을 더 준다는 식의 묘안을 내어놓으니, 50대는 고사하고 40대 까지도 우루루 정든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정년단축을 해서 잘된 것이 무엇인가. 한꺼번에 쫓아내고 보니 연금이 부도나고, 교사가 부족해서 나갔던 사람을 다시 불러 새로 월급을 주니 명퇴관련 빚진 돈이 무려 2조4천3백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등 저학년은 정말 원숙한 지도기술이 필요한데도 20대 젊은 교사가 맡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으며 아직도 부족한 초등교원 3∼4천명은 외국에서 수입이라도 해와야 할 판이다. 전국의 학부모와 국민들은 현재 학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한국판 홍위병의 준동으로 인한 교육파괴가 심각함을 알아야 한다. 현 정부는 매우 조직적으로 이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평화롭고 즐거워야 할 학교가 급진 세력이나 집단의 활동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다 학교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모두들 무언가를 두려워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홍위병들이 큰 소리로 목청을 높여도 대다수 선량한 교직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으니 이 나라에 과연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는지 의심스럽다. 학문과 교육을 경시하거나 말살한 왕조나 정권이 흥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진(秦)나라가 그렇게 해서 한(漢)나라에게 멸망했고 중국의 발전이 그렇게 해서 후퇴했던 것이다. 교육은 급격한 개혁(revolution)이 아닌 점진적인 개선(innovation)이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국가사업 중에서 가장 원대하고 큰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가 교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의 정책책임자는 지금 교육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이 망하지 않을 방도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도 만약에 정책책임자 자신이 홍위병을 직접 조종한다면 그것은 교육과 국가발전에 역행함은 물론,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고금의 역사에서 교훈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