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됐고 전 국민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이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계열별 남녀별 지역별로 최고득점자가 누구이며 어느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는지 등에 대해 자못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런데 계열별 최고득점자가 ○○대학의 법대나 의대 등으로 진학하고자 한다는 장래 계획을 밝힐 때, 우리는 대부분 그들의 선택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왜 그들 중에서 철학이나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신하겠다는 학생은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의문을 품지 않는다. 요즈음 '農業'이란 글자를 앞세운 순진한 학과명을 보았는가. 이런 현상은 수능 고득점자 중 농업을 전공하겠다는 학생을 만나기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근원적인 농업의 장래가 이토록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原書로 된 농약 사용량도, 전문용어로 쓰여진 농기계 사용법도, 환경오염의 심각성도, 농약이 인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비전문가에게 농업을 맡겨버리고 소위 영재들은 의사나 법관이 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며 누가 안전한 식량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욱이 선진국의 유수 곡물메이저들은 자체로 인공위성을 띄워 놓고 세계 구석구석의 작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식량을 무기화 하려 하고 있다. 서 너 해 만에도 농업의 기반은 허물어져 버린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허물어진 기반을 복구하려면 수십 년을 고생해야 하는 것이 바로 농업이다. 어느 철학교수는 첫 강의에서 '여러분의 선택을 한번 더 생각해 보라'며 학생들을 내보냈다고 한다. 20세기는 자연과학의 엄청난 발전과 인문·사회과학의 철저한 답보로 선명하게 대조된다. 역으로, 인문·사회과학이, 특히 철학의 사변적 기능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양자간의 불균형이 촉진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의 진행방향을 제시하고 속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철학이 가진 사변적 기능이 아니던가. 왜 이런 분야에 관심이나 사명감을 느끼는 고득점자는 나타나지 않으며, 이를 걱정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국민도, 정치가도, 학자도 나타나지 않는가. 우수 학생들이 몇 몇 인기 있는 학과로만 몰리는 편중화 현상은 분명 하나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인생을 설계할 수 있고 또 응당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사회가 안정되고 인류가 행복해 질 수가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하물며 그것이 농업과 철학임에랴. 어느 한 분야는 지나치게 발전하고 다른 분야는 심각하게 뒤쳐지는 사회 속에서, 설령 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사회와 그 속의 구성원이 모두 행복해 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원인은 공교육과 사회 전체적 인식 혹은 노력의 부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미 다양한 진로지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으나 관심 부족으로 활용되지 않고, 그나마 모든 진로지도의 목적이 개인의 자아실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국가·사회적 필요는 대부분 외면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각적으로 자신과 주위와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사회와 학교는 제공해야 한다. <이순윤 경남과학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