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교육부는 2002학년도 대입 전형이 고교 교육 정상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의심스럽다. 우선 2002년 입시는 특차모집이 폐지되고 정시모집도 3개군으로 축소됨에도 대학별 다단계 전형과 심층면접에 필요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수능시험을 일주일이나 앞당겼다. 이는 대학의 편의만 제공한 것이지 고교 교육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현재도 학교는 시험 실시 후 2월 졸업까지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내년에는 11월 초부터 손을 놓으라는 것이다. 고교 중간-기말고사 기간을 피해 2001년 5월20∼6월20일 사이에 실시하는 1학기 수시 모집 제도도 고교 교육 정상화를 흔드는 제도다. 교육부는 대학별 총정원의 10% 내에서만 학생을 모집해 고교 교육에 차질이 없다고 장담하지만 이는 현장의 특성을 모르는 말이다. 우선 한 달 사이에 실시하는 수시모집은 고교 학교 행정을 완전 마비시킨다. 담당 부장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대학별로 요구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학내 내규를 만들고 공정한 추천을 위해 각종 고사를 기획하고 실시한다. 그리고 담임교사는 학생의 추천서 작성과 기타 자기 소개서, 학업 계획서 등을 점검하고 면접 모의 훈련까지 하다 보면 수업이 부실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또한 일찍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은 10%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2학기 수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되는 시점에는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도선매 당할 것이다. 이런 학생들과 이미 수시모집에서 패배하고 정시모집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생활하는 것은 교사의 수업 전개와 생활지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하고 등록을 마친 학생들은 학업이 부실해지고 목표 의식 없이 졸업하는 날짜만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02학년도 수능시험은 총점과 석차를 제공하지 않고 그에 관련된 정보가 스태나인(Stanine) 방식에 의해 9개 등급이 제공되고 영역별 성적만 제공되기 때문에 수능 성적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는 대신 학생부, 심층면접 등 다른 전형요소 반영 비율이 높아지고 수험생의 특기와 적성을 존중하는 특별전형이 대폭 확대된다고 한다. 이 제도로 수능시험 성적은 최저 자격 기준으로만 사용하게 되고 현재와 같이 수능 점수 몇 점을 더 얻기 위해 고액 과외를 하지 않으 것이라고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어이없는 기대다. 3등급 수준에 있는 학생은 2등급으로, 2등급 수준에 있는 학생은 다시 1등급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 제도는 수능시험도 잘 봐야 하고 심층면접 준비 등 대학별 전형요소에 맞게 만능 수험 준비생이 돼야 하는 부담감만 가중된 제도이다. 2002년 새 대입제도의 기본 정신 중 하나가 고교의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 현장에서 바라보면 새 제도는 대학의 편의만 제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부 당국의 표현대로 고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위의 사항이 자세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윤재열 경기 수원동우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