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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필 당선> 아들의 신앙

마당에도 안 계신다. 마루에도 안 계신다. 서둘러 사랑방 문을 여니 한겨울 오후의 옅은 햇살이 냉기 가득한 빈방을 지키고 있다. 가슴이 미어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펑펑 솟는다. 돌아가신지 25년이 지났건만 고향집에만 오면 아이처럼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내가 흉볼까봐 서둘러 눈물을 닦고 새로 지은 안채로 건너간다.

현관을 들어서니 형님 두 분과 형수님 두 분 그리고 제수씨가 이미 제사 음식을 장만하시느라 분주하다. 형제를 만나는 반가움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밀어낸다. 나는 세상의 모든 직함을 버리고 그저 계산댁 셋째 아들이 된다.

작은 방으로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다. 깨끗이 씻은 문어, 돔베기, 쇠고기 그리고 고등어 등이 소반에 담겨있고, 널찍한 도마에 놓인 큰 칼은 새파랗게 날이 서 있다. 손을 씻고 무릎을 꿇어 조심스럽게 도마 앞에 앉아 어육을 장만하기 시작한다.

어육을 장만하는 특별한 일은 의례히 두 분 형님께서 맡아하셨다. 어육을 다루는 절제된 손길과 경건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형님들의 아버지에 대한 흠모의 지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모의 숭고가 열락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몇 해 전에 어육 장만하는 일을 물러 받고 몹시도 두려웠던 것은 내 거친 성정과 서투른 솜씨에 대한 내 불신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두렵다.

문어 다리 하나를 잘라 도마 위에 올린다. 허물거리는 검붉은 껍데기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한 치 반 정도의 길이로 도막을 낸다. 도막난 문어를 다시 세로로 서너 조각 나누어 꼬치에 꿸 수 있도록 저름(점)을 만든다.



아버지는 문어를 참 좋아하셨지만 비싸서 자주 드시지 못했다. 문어를 사 오시면 한꺼번에 드시지 않았다. 한겨울에는 사랑채 석가래 끝에 꽁꽁 얼도록 매달아놓고 조금씩 잘라 드셨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내가 가끔 문어를 사드린 까닭으로 제사상에 올릴 문어 사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문어 저름이 만들어지면 속살이 위로 올라오도록 꼬치에 꿴다. 전에는 산에서 베어 온 싸리나무로 만든 꼬치를 썼는데, 요즈음은 시장에서 파는 대나무 꼬치를 사서 쓴다. 저름 사이가 너무 빽빽하면 융통성이 없어 격이 낮아 보이고, 너무 헐렁하면 실속이 없어 보인다. 꼬치가 다 꿰어지면 뾰족한 끝을 칼로 다듬어 마무리 한다.

제사에 관한 모든 결정은 큰형님께서 하신다. 문어를 미리 맛보는 일도 큰형님의 일이다. 큰형님께서 문어를 잘 샀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행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언제나 최고여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큰형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 곁에 계시면서 부모님 봉양과 동생들 치다꺼리로 힘든 삶을 사시면서 섭섭해도 화내지 않으시고, 앙탈을 부려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형제들이 모이면 고향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주시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이다. 우리는 오늘도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자의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때 묻지 않은 삶의 원형을 만난다. 큰형님을 통해 아버지를 만난다.

문어 다음에는 돔베기를 꿴다. 돔베기 장보기는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살이 희고 졸깃졸깃하여 감칠맛이 나는데, 어떤 때는 윤기가 없고 터벅터벅하여 나무껍질을 씹는 것 같다. 익혀서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안타깝다. 장사꾼을 믿거나 운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돔베기는 길이가 어정쩡하여 저름 만들기가 어렵다, 두 도막을 내면 너무 길고, 세 도막을 내면 너무 짧다. 올 해는 큰 맘 먹고 두 도막을 내어서 저름을 큼직큼직하게 만든다. 형제들의 살림살이가 큼직한 돔베기 저름처럼 더 넉넉하고 더 풍족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주차하는 소리가 나더니 동생이 현관을 들어선다. 짧게 깎은 머리와 굳게 다문 입술이 강단해 보인다. 동생은 공부를 많이 못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중간에 그만 둬야 했다. 배운 것이 적은 동생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셔도 동생은 그저 덤덤할 뿐 슬퍼하지 않았다. 외롭게 하늘만 쳐다보았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삭이고, 세상을 향하여 마음을 열었다. 이제 웃는 얼굴로 형님들 곁에 앉는다.

동생이 합세하자 집안 분위기가 한층 더 화기애애하다. 고향 이야기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영역으로 번져간다. 차분하던 큰형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작은 형님도 이에 질세라 목청을 돋우고, 동생도 있는 힘을 다해 거든다. 말 주변 없는 나도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탠다. 형제간에 불화를 많이 겪으셨던 아버지는 아홉 남매가 정 있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형제는 진위, 선악 그리고 미추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돔베기를 다 꿰면 쇠고기를 잘라 저름을 만든다. 쇠고기는 시내에 사시는 작은 형님께서 식육점을 하는 친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사 오신다. 선명한 붉은색에 하얀 기름이 고르게 퍼져있는 최고급 쇠고기이다. 쇠고기에는 아버지의 속을 가장 많이 썩혀 드린 작은 형님의 속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쇠고기는 결을 잘 살펴서 저름을 만들어야 꿰기가 쉽고 모양도 좋다.

다 꿴 쇠고기는 다져야 한다. 꼬치 위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칼등으로 정성을 다하여 자근자근 두드린다. 너무 세게 두드려서 고기가 해지면 정성이 부족해 보이고, 약하게 두드리면 소금이 배지 않아 맛이 적다. 중용은 어려운 것이다. 동생도 같이 다진다. 고기 다지는 소리가 장단이 된다.

이야기 소리와 쇠고기 다지는 소리로 떠들썩해지자, 전을 부치시던 작은 형수님이 살짝 나선다. 형제간에 모여 대통령처럼 말하고, 국회의원처럼 행세하고, 판사처럼 시비를 가리고, 의사처럼 처방하는 모습이 가관이라고 꼬집는다. 형제간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면 며느리들은 무엇 하느냐고 익살을 떤다. 모두가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는다. 배추전을 다 부쳤으니 이제 다시마전과 북어전을 부쳐야한다.

비린내가 나는 고등어는 제일 나중에 꿴다. 먼저 대가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뼈째로 세 도막낸 다음 세로로 잘라 저름을 만든다. 여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살점이 흩어진다. 저름을 내고 남은 고등어 꼬리는 어탕을 만드는 데 쓰고, 대가리는 따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구워서 반찬으로 먹는다.

인근 동네에 살고 계시는 큰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다른 누님 세 분이 멀리 살고 계시니 제사에는 큰누님이 혼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큰형님은 전화에 대고 늦게 오신다고 나무라신다. 그만큼 보고 싶다는 말씀이다. 걸어오겠다고 했지만 동생이 후다닥 일어나서 차를 몰아 누님을 모시러 간다.

꼬치를 다 꿰고 나니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등이 당기고 어깨가 뻐근하다. 부엌에서 숙주나물을 장만하시던 큰형수님이 얼른 달려와서 어깨를 주물러 주신다. 고기를 꿰느라 수고한 시동생이 고맙다는 표시이다. 부모님을 모신 큰형수님의 손길은 소박하고 진실하여 믿음직하다.

대구에 사는 막내 동생 부부만 오면 형제가 다 모인다. 막내는 어른이 되도 항상 막내이다. 늦게 와도 되고, 일을 안 해도 탓하는 사람이 없다. 막내는 시루떡을 맡아서 해 온다. 시루떡은 항상 따끈따끈하다. 출발한지 한 시간쯤 지났으니 곧 도착할 것이다. 도마를 씻으러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은 보름달 푸른빛으로 가득한데, 사랑방 문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오늘 저녁 일찍 주무시나 보다. 우리 형제 웃음소리 들으시며 기쁜 마음으로 편히 잠드셨나 보다. 아무 걱정 없이 고이 잠드셨나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형언할 수 없이 찬란한 기쁨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번져나간다.
아버지는 돌아가셔도 언제나 내 속에 계신다. 아버지의 기운과 내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아버지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내 기쁨이 다시 아버지의 기쁨이 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영원한 신앙이다. 나는 찬물에 도마를 씻으면서도 손이 시린 줄을 모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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