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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반세기 교육·전법의 길을 말하다

현익채 전 금정중 교장
부산 최초 어린이 불교조직 창립
청소년 포교·불자교육까지
지역 불교교육사의 산증인

 

부산 불교계와 교육계를 잇는 한 인물의 삶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역사다. 76세의 나이에도 또렷한 기억과 단단한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이야기하는 현익채 전 금정중 교장. 그의 삶에는 가난 속에서 길어 올린 인내, 청년 시절에 만난 불법(佛法)의 울림, 그리고 평생을 바친 교육과 전법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 사람의 교직 인생을 넘어, 지역 불교교육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북 경산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유년기는 녹록지 않았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빈농의 아들로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은 결핍의 연속이었다. 전기도 없는 집에서 호롱불에 의지해 공부하던 밤,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단순한 고난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배운 끈기와 인내가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의 가난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삶을 관통하는 담담한 성찰이 묻어난다. 훗날 수많은 병고 속에서도 집필과 포교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력 역시 그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산대학교에 입학하며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불교학생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약칭 대불련) 활동은 단순한 동아리 경험을 넘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매주 이어진 법회와 수련회 그리고 1969년 범어사에서 열린 수련대회는 그에게 깊은 신심을 심어주었다.

 

특히 1971년 대불련 부산지부장으로 활동하며 그는 조직을 이끌고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는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의 활동은 훗날 10여 개 불교단체를 창립하고 20여 권의 책을 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그때의 열정과 원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회고한다.

 

 

교직에 들어선 이후 그는 교육자이자 지도자로서 또 다른 길을 개척했다. 특히 부산지역 청소년 불교 활동의 체계를 세운 일은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1975년 금정중학교에 부임한 그는 학생 불교 활동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연등불교학생회를 창립해 18년간 지도했고, 부산불교학생연합회 지도위원회 활동을 통해 수많은 청소년 불자들을 길러냈다. 당시 부산지역 고등학생 불자회는 1000명이 넘는 규모로 활발히 운영되었고, 그는 그 중심에서 실무를 맡아 쉼 없이 활동했다.

 

이와 함께 그는 청소년 포교의 기반을 더 낮은 연령대로 확장하는 데에도 힘썼다. 1977년 부산 최초의 불교 어린이 조직인 ‘법륜불교어린이회’ 창립에 참여하며 어린이 신행교육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이어 1984년에는 전국 최초로 중학생 불자연합체인 부산불교중학생연합회를 발족시켜 청소년 불교교육의 연령별 체계를 완성했다. 이는 단순한 조직 확대를 넘어, 생애주기별 신행교육의 틀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37년간 몸담은 금정중학교에서 그는 교사이자 교법사, 그리고 교장으로 학교의 방향을 이끌었다. 불교종립학교라는 특성을 살리면서도 일반 교육과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은 학교 운영 전반에 반영되었다.

 

최근에는 ‘종교와 인간’ 교과를 통해 정규 수업 안에서 종교교육을 실시하고, 명상과 마음 챙김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봉축행사, 수계식, 졸업법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접하도록 했다. 그는 종교교육을 “지식을 넘어 삶의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교과 활동을 넘어 인성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 전 교장의 활동은 학교를 넘어 지역 불교계 전반으로 확장된다. 특히 부산불교교육대학과 재단법인 불심홍법원에서의 활동은 부산 불자교육의 체계를 구축한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는 총무처장, 부학장, 운영위원장 등을 맡아 20년 이상 봉사하며 재가 불자교육의 기반을 다졌다. 1990년대 이 기관은 전국 최다 포교사를 배출하고 1만여 명의 졸업생을 길러낸 대표적인 불자교육 도량으로 성장했다.

 

 

또한 1990년 설립된 (재)불심홍법원에서는 사무국장으로 13년간 재직하며 어린이·중·고등학생·대학생에 이르는 연계 포교 시스템을 구축했다. 부산 지역 청소년 불교단체들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데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부산불교신도회 등에서 20년간 봉사하며 인명부 발간, 신행 조직 정비 등 재가불자 기반 강화에도 기여했다. 다만 2000년대 이후 탈종교화 흐름 속에서 이러한 단체들이 점차 위축된 현실에 대해 그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교육과 전법 활동과 더불어 그가 평생을 바쳐온 또 하나의 영역은 ‘기록’이다. 《부산불교총람》, 《사진으로 다시 보는 근현대 부산불교》 등 20여 권의 저서를 통해 그는 부산 불교의 흐름을 정리해왔다.

 

특히 최근 발간한 책은 반세기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된 역작이다. 일제강점기의 사진 자료 발굴, 부산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사찰이 기여한 사실의 재조명 등은 그가 아니었다면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역사들이다. 그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신념으로 자료를 모아왔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사라져가는 불교계의 흔적을 남기는 일은 그에게 사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오늘날 그는 교육과 종교가 동시에 위축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학령인구 감소와 탈종교화, 개인주의 확산은 청소년 신행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본다. 명상과 마음 챙김, 공동체 의식, 환경 보호 등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통해 종교와 교육이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교육계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익채 전 교장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이력이 아니라, 부산 불교교육의 역사이자 한국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가난 속에서 시작해 교육과 신행, 그리고 기록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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