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운동장에서 졸업식이 있었다. 교직생활에 몸담은 지 어언 23년째. `사람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난다'는 말처럼 사제간에도 회자정리의 운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올해도 아쉬움과 섭섭함을 뒤로 한 채 5백 여명의 학생들이 정든 교정을 떠났다. 엊그제 밤송이 머리의 앳된 모습으로 입학했던 그들이 어느 새 여드름이 생기고 콧수염이 자라 제법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으로 졸업하게 됐으니 마냥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졸업식의 지켜본 나는 그 `무미건조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교정을 떠난다는 슬픔과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이 교차해 사뭇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졸업식이 치러졌다. 교정을 떠나는 학생들이 못내 아쉬워하며 울음바다를 이루었고 마지막 떠나는 교실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담임선생님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우르르 몰려들었고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가 오갈 때는 모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친근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그저 담담하다. 졸업식도 간소화 돼 송사와 답사조차 없고 수상식이 졸업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교장선생님의 회고사 때도 귀담아 듣기 보다는 옆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을 치는 아이가 많고, 졸업식 노래에도 석별의 정이 담기기보다는 담담하고 명랑한 표정이 역력하다. 사회분위기나 가치관이 물질만능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에 젖어버린 탓일까? 고교생활이 지긋지긋한, 그저 지나가는 학업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강해서일까? 선생님과 사진 한 장 찍어 기념으로 남기려는 학생도 이젠 드물다. 감사의 말 한 마디조차 없이 식이 끝나자마자 휑하니 돌아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볼 때면 왜 그렇게 안타깝고 서글픈지….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이란 인사 한 마디라도 하고 갔더라면 덜 서운할 텐데….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만 탓할 수도 없다. 그런 졸업식을 치를 때면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해 제자를 가르치고 지도했는가'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진정 사표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이끌었다면 3년 동안 보살피고 가르쳐 준 정성에 감사의 표시와 함께 아쉬움의 정을 나누지 않았을까? 사제간에 뜨거운 정이 흐르고 이별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던 옛 졸업식을 바라는 마음이 이제는 한낱 욕심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우정렬 부산 혜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