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교육과정 운영 계획을 세우기 위해 밤샘을 한다. 수업하랴, 교실 손보랴, 담당 업무 챙기랴, 학생들의 동태 살피랴 정신이 하나 없다. 한 학년 중 가장 바쁠 때가 지금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도 평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그것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이틀 밤을 세웠다. 1999학년도와 2000학년도 실적물까지 내 놓으라고 한다. 가관이다. 2001학년도를 시작하여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진즉 내 놓으라고 하지, 왜 1999학년도 분까지 제출하라고 하는지 아리송하다. 차라리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이 없다면 더 교육이 잘 될 것이라고 비난하는 교원들도 있다. 여기서 어떤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지 거론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뭐 그런 일까지 교원들이 하나?' 하고 일반인이 보면 참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양적인 특성보다는 질적인 특성이 많고 강하다. 그런데도 교육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양적인 생각에 갇혀 행정을 펼쳐왔다. 그 동안 벌어진 이상한 일들, 예를 들면 교원 정년 단축, 중등 교사 자격자의 땜질식 초등 임용, 명퇴자 기간제 교사 재임용, 성과급제, 시·도 평가를 통한 차등 예산 지원 등등. 이는 양적이며 경직된 사고에서 초래된 것이다. 시·도 평가만 하더라도 그렇다. 왜 지금 평가하면서 1999학년도 실적 자료까지 제출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그토록 시·도 평가를 하고 싶으면 매년 하면 더 나을 것 아닌가! 또 이런 양적 위주의 평가를 하면 학교 교육현상도 자연 양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다시 옛날처럼 번문주의, 문서 중심, 형식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리하여 현장 교사들은 위대한(?) 교육행정가들이 `보고 중심의 획일화 교육'을 은연중 조장한다고 느낀다. 교사의 본업은 학생을 잘 가르치는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라고 시·도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좋은 평가를 받으면 예산 몇 조각 더 준다고 한다. 그 예산이 새로 창출된 것이 아니고 이쪽에서 떼어서 저쪽에 주는 형식이다. 마치 예산을 미끼로 목표를 달성해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지금의 시·도 평가는 문제가 많다. 우선, 평가 결과 높은 점수를 받은 시·도에 더 많은 예산을 주는 일이다. 내 생각에는 오리려 낮은 점수를 받은 시·도 교육청에 더 많은 예산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적 시각이다. 마치 한 교실에서 학력 수준이 낮은 학생을 배려하여 가르치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 다음으로 평가 방식과 형식이 지나치게 문서 또는 눈으로 드러난 실적 위주로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학교 교육은 외형 위주의 거품 교육으로 왜곡되고 있다. 평가 시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제 막 제도를 시행했는데 성급히 결과를 확인하고 평가하는가 하면, 2001년 3월 13일에 재작년 분 시·도 평가 자료까지 제출하라고 하니 한참 잘못됐다. 이제는 과연 시·도 평가가 진정 교육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이영재 전남 영암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