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문제지 유출에 이어 스타강사 납치·협박 사건이 터지면서 강남 학원가의 땅에 떨어진 윤리 의식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찰은 29일 유명 SAT학원 R사의 신사점 대표 A(40)씨 등이 학원소속 강사인 B(38)씨를 납치한 뒤 흉기로 위협해 재개약을 강요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 대상자 9명 가운데 2명에 대한 조사가 끝났으며 이들은 B씨를 납치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앞서 25일 SAT 시험지를 빼돌린 혐의로 SAT학원 강사 장모씨를 구속했다.
교육기관인 학원이 시험지를 유출하고 납치·협박까지 일삼은 것은 탐욕과 한탕주의에 눈먼 학원가와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관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SAT 학원의 성수기는 미국 고등학교의 방학 기간인 6월 중순~8월 말, 12월 초~1월 중순이다.
방학을 이용해 귀국하는 미국 유학생을 상대로 연간 수익의 대부분을 올려야 하는 SAT 학원은 구조적으로 한탕주의에 물들기 쉽다는 것이다.
유학생들도 단기간에 점수를 끌어올려야 하기에 예상문제를 정확하게 뽑아주는 족집게 강사를 선호해 스타급 강사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해 태국에서 SAT 문제지를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김모씨의 경우 1회에 280만~300만원씩 한 달에 10차례 이상 개인과외를 해 3천만원 이상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대치동 C어학원장 김모(50)씨는 "납치된 B씨 정도 되는 스타강사는 1회당 500만~600만원 이상 부르는 것으로 안다"며 "두 달 남짓한 여름 시즌에 개인과외로만 1억원 이상은 벌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스타강사들은 학원에서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원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도 스타 강사의 보유 여부가 학원의 성쇠를 좌우하기에 경쟁적으로 스타강사 유치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R어학원도 학원의 간판인 B씨가 이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한철 장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납치·협박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SAT 학원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데에는 학부모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C어학원장 김씨는 "고액의 SAT 수강료와 개인과외비를 학부모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며 "아무리 많은 금액을 요구해도 좋은 점수만 받게 해주면 불만을 제기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동시에 치르는 시험의 문제지를 유출하고, 교육기관을 표방하는 학원이 납치·협박을 일삼는 배경에는 "거금을 들였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는 학부모들의 그릇된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