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육적 이론과 행위에는 인간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이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한은 자본주의·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각기 다른 인간관을 추구하였으며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 구현되어져 왔다. 그리고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 들어서면서 세계 각국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창의성 교육은 교육개혁의 핵심적인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난 17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창발적·온정적 인간육성을 학교교육의 주요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창발적이라는 용어를 두고 용어의 적절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창발성 용어를 둘러싼 이번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교육정책에 있어서의 신중한 용어사용의 필요성이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대학 무시험 전형, 소비자 중심의 교육 등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으로 인해 교육정책 추진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창발성이란 용어도 창의성과 개념이나 실천면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특히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이해를 공개적 논의과정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자의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정책당국자의 과감성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고 일순간에 우리 교육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장관이 즐겨 쓴다고 하여 이를 새로운 교육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교육관료들의 행태는 시정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의 교육정책을 조삼모사에 비유해온 것처럼 정책의 일관성 결여는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되어왔다. 정권이 교체되거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뒤바뀌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장관의 교육적 신념이나 의지가 소관부서의 업무에 반영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이것이 구체적 정책 없이 언어적 유희로 그치거나 오히려 학교교육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익숙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할 경우 그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정책의 정확한 목표와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용어의 적절성에 대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어휘를 충분한 숙고 없이 장관이 즐겨 쓰는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책의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교육관료들의 태도는 시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