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어느 날, 학교 화장실을 좀 바쁘게 정리하는데 묻은 때가 아무리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곳이 있어 고심하고 있었다. 그 때, 고학년 남학생 중 한 아이가 들어왔다. 나는 "얘야, 너 교무실에 가서 내 책상 위에 놓인 연필 깎는 칼 좀 갖고 오겠니?"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어데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계속 "내 책상 위에 있다니까"라고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계속 "어데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그 아이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아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지능이 약간 떨어져 매사에 언행이 더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그러면 그렇지. 너니까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이 녀석! 그것도 못 가져오니?"라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책상 위 어디, 어찌 놓였는지 가르쳐 줘야지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바로 그것이었구나' 나는 그 순간 이 아이가 단숨에 가지 않고 계속 반문한 이유를 알아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에게 보통 아이들에게처럼 말한 잘못은 모르고 아이의 행동만을 보통 아이와 비교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제야 나는 차근차근 더 자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잽싸게 그 칼을 찾아왔다. 나는 빙긋 웃으면서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그래, 잘했다. 참 고맙구나"라고 칭찬했다.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날 나는 크게 깨닫고 그야말로 많은 것을 그 아이에게 배웠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명색이 아이들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자칫하면 그 아이, 아니 오래도록 수많은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오해를 저지를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그 아이 덕분에 그런 잘못을 예방할 기회를 얻어 그저 고맙게 느껴졌다. 그 때, 그 아이는 내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 스승이었다. <윤태진 경북 남천초등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