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신입생을 많이 뽑으니 입학사정관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학부모가 자원봉사 활동을 많이 해 자녀 이름으로 자원봉사 활동실적 확인서를 많이 내달라."
올해 고등학교에 딸을 보낸 학부모 김모(43)씨는 지난달 말 학교공개의 날 행사 때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11일 "당시 이 선생님은 지방에 있는 학생은 수능 실력으로 명문대학에 가기 어려우니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며 아이들은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니 학부모가 부지런히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고 전했다.
이 같은 '비교육적 조언'은 이 학교뿐 아니라 전국 고교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울산의 한 고등학교 진학 담당교사는 "교사가 학부모를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자녀의 자원봉사 활동을 대신하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그러나 많은 교사가 개별적으로 학부모에게 학생 대신 자원봉사를 하고 확인서를 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다른 지역 고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울산만 정상적으로 학생이 봉사활동을 한다면 다른 지역 학생과 비교해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년도부터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토익, 해외봉사활동 등 공교육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전형요소가 평가에서 제외되고 창의적 체험활동인 봉사활동에 대한 점수 반영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복지기관이 자원봉사를 한 학부모에게 자녀의 이름으로 자원봉사 활동실적 확인서를 발급해 주는 관행 탓이다.
울산에 있는 사회복지기관은 노인요양원, 자원봉사센터 등 50여곳. 이곳은 대부분 시민 자원봉사자의 활동으로 운영된다.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활동을 한 후 자녀 이름으로 실적 확인서를 떼달라고 요구하면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울주군 노인요양원의 한 관계자는 "토, 일요일 자원봉사를 한 뒤 자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며 자원봉사 활동실적 확인서를 발급해 달라는 부모가 많다"며 "자녀 이름으로 확인서를 떼주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아 학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발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산과학기술대학교의 이진영 전임 입학사정관은 "자원봉사 활동이 많은 학생에게는 심층면접에서 입학사정관이 개인 소감 등을 물어보는데 직접 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학생은 대답이 군색할 수 밖에 없다"며 "심층면접으로 본인의 활동인지 아닌지 대부분 걸러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원봉사 확인서를 대리로 내는 것은 고등학교나 학부모의 잘못된 판단"이라며 "학생이 자원봉사를 할 수 없는 시간에 자원봉사를 했을 때는 그 실적을 신뢰할 수 없으며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