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季布)는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신의와 정의로운 행동으로 명망이 높았다. 한때 항우를 도와 번번히 유방을 곤궁에 빠뜨렸었는데도, 유방은 승리를 거둔 후 그의 인품을 높이 사 그를 사면해주고 나아가 벼슬을 내릴 정도였다. 한 번은 유방이 죽고 그의 황후인 여후(呂后)가 정권을 쥐고 있었는데 흉노왕이 여후를 희롱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당신은 과부고 나는 홀아비이니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라는 매우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여후는 노하여 여러 장수를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그러자 상장군 번쾌가 십만 병의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가서 흉노를 혼내주겠노라며 큰소리쳤다. 여러 장수들이 여후에게 아부하느라 번쾌의 말대로 하자고 서로 거들었다.
그러나 계포는 “이전에 고조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사십만의 병사를 이끌고도 평성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번쾌는 십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니 이는 거짓입니다. 황후의 면전에서 아첨하느라 천하를 동요케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순간 모든 사람이 계포가 이번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여후는 곧 회의를 끝내고 다시는 흉노를 공격하는 일을 꺼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의 국세가 흉노만 못하였는데, 계포의 말이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한 충직한 말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계포의 이러한 언행 때문에 당시에 “황금 일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한 마디 응낙을 얻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퍼졌다. 이 고사에 나온 ‘계포일락’(季布一諾)이라는 성어는 ‘말이란 옳고 그름을 가려 신중히 해야 하고, 일단 말을 했으면 이를 반드시 책임져야한다’는 뜻이다.
이번 천안함사건에서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대변인들이 자주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군의 지휘체계과 업무수행능력에 대해 의아함과 착잡함,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군의 ‘계포일락’과 같은 자세가 더욱 엄격히 요구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