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기억하는 영화 속 가장 슬픈 대사 중 하나는 "다시 시작하자"입니다. 장국영과 양조위(해피투게더)의 서로 생채기만 내던 사랑에서 비롯되었던 그 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제 삶의 언저리를 돌았습니다. 슬픔의 이유는 물론 '다시 시작할 수 없음'으로 인한 것이었지요.
세상이 버렸던 남자, 강재가 파이란을 만나러 가는 그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마치 마취에서 깨어나듯 파이란의 절절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게되자 힘이 들었어요"
스물 두 살 처녀의 수줍은,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편지는 마치 깨진 유리 파편처럼 강재의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그의 답장은 그래서 피를 토하는 듯한 오열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상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사랑을 허망하게 보낸 그는 거의 폐기처분 직전에 자신의 삶에 눈을 뜨게 되지요. 파이란의 사랑이 강재에게 '개안(開眼)'의 아픈 깨달음을 준 것이지요.
살아가다가 보면 가끔 나란 존재가 이 세상에 덩그마니 던져진 작은 돌덩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 실망하고 고통을 느낄 때조차 이런 나를 이해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는...나를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면...
파이란의 편지는 강재에게 자신은 몰랐지만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홀로 아파하며 고통스럽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살아있을 때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그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런 바보 같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그는 눈물을 흘립니다...
부질없지만, 포기가 안 되는 상투적인 가정을 하고 싶습니다. 강재가 하루만 늦게 경찰서에 잡혀갔더라면... 강재가 경수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고향으로 내려갔더라면...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