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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를 뛰쳐나온 화적, 문학 속 영웅이 되다

(2) 벽초 홍명희의 흔적, 안성과 괴산

벽초 홍명희의 고향인 괴산에 들어서면 험상궂은 모습보다는 다소 귀엽게 표현된 임꺽정의 캐릭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의적이라면 모름지기 칼이나 굵은 몽둥이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괴산의 특산물을 어깨에 들러낸 모습이 어찌 보면 소박한 농민의 대변자 같다. 오늘은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를 찾아간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이 어수선하고 가난한 민중들이 권력자의 횡포로 핍박을 받을 때마다 민중의 편에 서서 홀연히 나타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 역시 가장 설움을 받아온 민중이지만 ‘빈민구제, 탐관오리 응징, 이상향 건설’을 꿈꾸며 칼과 죽창을 들었고, 우리는 그들을 의적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의적으로는 홍길동(洪吉童)과 임꺽정(林巨正), 그리고 장길산(張吉山)을 들 수 있다. 조선조의 대학자인 성호 이익(李瀷)이 그의 저서인 <성호사설>에서 이 세 사람을 조선의 3대 도둑으로 꼽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일개 도적의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의적들은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한낱 화적패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민중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3대 의적 임꺽정…칠장사



이 세 의적의 이야기는 모두 소설로 새롭게 탄생한다. 가장 먼저 쓰여진 허균의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은 이제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혁의 몸부림을 통해 민중이 나아갈 길을 인도하고 있다.

한국 최고의 대하소설 <임꺽정>을 지은 홍명희의 고향인 충북 괴산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를 들렀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일죽나들목을 빠져나오면 진천으로 향하는 17번 국도를 만난다. 죽산면소재지에서 진천 방향으로 약 4km 정도를 달리면 우측으로 칠현산 칠장사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3km 정도를 들어가면 칠현산 자락에 안겨 있는 천년의 고찰 칠장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칠장사로 향하는 도로 옆으로 펼쳐진 풍경에 젖다보면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싱그러움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든다. 차창을 통해 드러나는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칠장사의 산문에 도착한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마을 노인 두 분이 절 입구에서 노점을 열고 있다. 정성껏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 은은한 향기가 묻어나는 산더덕을 가지런히 펼쳐 놓고 앉은 모습이 어린 시절 맛보았던 할머니의 푸근한 정을 새록새록 돋게 한다.



칠장사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임꺽정이 같은 천민 신분으로 스님이 된 병해대사를 만나 제자가 되는 곳이며 이봉학, 길막동, 곽오주 등 일곱 명의 도적이 모여 의형제의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칠장사는 실제 역사적안 공간인 동시에 소설 속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칠장사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천왕문을 들어서는 순간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빛 바란 대웅전의 단청이며, 국보로 지정된 5불회 괘불, 보물로 지정된 혜소국사비와 석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가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가늠하게 한다.

칠장사의 명부전 외벽에는 소설 <임꺽정>과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임꺽정이 바위를 들어 힘겨루기를 하는 그림, 칠장마를 타고 호령하는 그림, 병해대사를 중심으로 일곱 명의 두령이 호위하는 그림은 누가 보더라도 이 칠장사가 소설 <임꺽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해 준다. 임꺽정은 스승인 병해대사가 입적을 하자 이곳 칠장사를 찾아와 목불을 조성하여 바치고 그 앞에서 여섯 명의 아우들과 형제의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 때 조성했다는 목불이 지금도 칠장사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임꺽정이 뛰어난 목공을 불러들여 조성했다는 목불의 이름은 속칭 ‘꺽정불’로 지금은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홍제관에 보관되어 있다. 초파일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찰에 찾아올 때는 특별히 홍제관 문을 열어 일반에게 불상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독립만세운동 괴산, 그리고 괴강

1910년 경술국치의 치욕으로 아버지 홍범식이 자결로써 순국하자 홍명희는 3년 상을 치른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오직 조국과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홍명희는 중국의 상해와 남경 등을 돌아다니며 여운형, 조소앙, 신채호 등과 만나 교류를 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괴산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장날을 기하여 시작되었는데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중심에는 애국심에 불타는 홍명희가 있었다. 거사를 앞둔 홍명희는 동부리 생가에서 스스로 독립선언서를 집필하고 숙부 홍용식과 동생 홍성희의 도움을 얻어 대규모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그 후 동부리 생가는 홍명희가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팔면서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괴산읍 동부리 450-1. 괴산 시내로 들어가서 괴산군청을 지나 1km 정도를 가면 역말교 옆에 한 기와집을 만나게 된다. 이 고택이 소설 <임꺽정>으로 한국 문학사에 우뚝 선 벽초 홍명희 선생과 경술국치에 자결로써 일본에 저항한 홍범식 열사의 생가이다. 이곳은 지난 2004년부터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 고택의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월북 작가의 집이라는 사실 때문에 보훈 단체들이 반대를 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항일투사인 아버지 홍범식 열사의 생가라는 후광을 업고 반대를 물리쳤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고택은 250년의 긴 역사를 지닌 집으로 조선조 양반 가문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를 지니고 있어 문화재로 가치가 매우 높다. 처음 건립했을 때에는 90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하나 대부분의 건물이 훼손되고 헐려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가 복원공사로 그 위용을 되찾게 되었다.

괴산읍 제월리 365번지. 이 집은 홍명희 일가가 동부리 고택을 처분하고 이주하여 살던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고택의 뒷산은 풍산 홍씨의 선산인데 홍명희의 고조부부터 아버지 홍범식까지 선조의 묘가 차례로 안장되어 있다. 고택에는 현재 홍명희의 5촌 조카가 거주하고 있다.

제월리 고택을 나와 제월대를 향하다 보면 마을 앞쪽으로 맑게 흐르는 괴강을 볼 수 있다. 홍명희는 서울 생활에 지치면 고향으로 내려와 이 맑은 괴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자연을 벗 삼아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고택에서 1km 정도에 위치한 제월대는 괴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승지로 고산정이 세워져 있는 기암 절벽을 말한다. 고산정에 앉아 맑은 괴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것이 물아일체구나’하는 탄성이 저절로 피어난다. 제월대에 오르면 멀리 홍명희의 고택이 있는 제월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매년 10월 홍명희문학제 열려



홍명희의 문학비는 제월대 주차장에 쓸쓸하게 서 있다. 1998년 10월 그를 사랑하는 많은 문인들의 성금으로 문학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많은 보훈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문학비는 다섯 개의 돌기둥이 문학비를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문학비의 앞면에는 홍명희의 얼굴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비문에는 소설 <임꺽정>에 대한 작가 홍명희의 창작 의지가 담겨 있다.

매년 10월이면 괴산 일대에서는 소설 <임꺽정>을 통해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벽초 홍명희를 추모하고,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홍명희문학제가 개최된다. 홍명희문학제의 주요 행사는 홍명희의 문학 세계와 소설 <임꺽정>에 대한 학술 강연회, 벽초 홍명희 관련 문학기행과 부대행사로 이루어진다. 괴산 지역에서는 홍명희의 부친으로 항일투사인 홍범식 추모비, 제월대의 벽초 문학비, 제월리 묘역과 고택, 홍명희 생가, 만세운동비 등을 방문하고 <임꺽정>의 무대가 된 안성시 죽산면 일원의 칠장사와 임꺽정 불(佛), 녹박재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부대행사로는 통일 시선, 도서 전시회, 임꺽정과 두령 캐릭터 및 엽서전시회, 만장 전시회, 전통 한지공예품 전시회 등이 있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
안성 도착 ⇒ 칠장사 ⇒ 녹박재 ⇒ 괴산 도착 ⇒ 동부리 생가 ⇒ 제월리 고택 ⇒ 괴강 ⇒ 제월대 ⇒ 홍명희문학비 ⇒ 괴산 출발

■ 가는 길
-버스(서울-괴산)=동서울터미널 매일 18회 운행 (요금 10,200원) 소요시간 약 2시간
-승용차(서울-홍성)=중부고속도로 이용 증평 나들목을 통과하여 수의삼거리와 서부교차로 지나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으로 진입. 중부내륙고속도로 이용 괴산 나들목에서 19번 국도로 진입.

■ 문의
괴산군청 문화관광과=(043)830-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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