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3학년 부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가뜩이나 학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던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중 묘안이 떠올랐다. 과목별로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학생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선생님을 초청해서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했다.
국어는 다행스럽게도 공교육에 계신 분이라 섭외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수학은 사교육에 계신 분이었기에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았다. 수학도 가능하면 공교육에 계신 분을 모시고 싶었지만 학생들의 선호도가 워낙 높다 보니 달리 대안이 없었다. 몇 차례 시도한 끝에 간신히 전화 연결이 되었으나 이미 꽉 채워진 일정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학생들이 직접 강의를 듣고 싶어 한다는 간청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필자는 국어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수학 분야에서 그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국내 최고 수학 강사로 자리 잡으며 상상을 초월할 연봉에 온라인 강의나 교재 판매 수익 등 웬만한 중소기업을 능가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말 그대로 학생들에게는 가히 수학의 신으로 불릴 정도였다.
특강일이 다가왔다. 학교 현관에 승용차 몇 대가 도착했다. 물론 강사분께서 도착한 것으로 알고 마중 나갔다. 그런데 강사분이 아니라 그분을 모시고 있는 조교들이었다. 강사분이 도착하기에 앞서 미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일종의 선발대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몇 대의 고급승용차가 도착했다. 특강을 맡아줄 강사분은 조교가 열어주는 문으로 나왔다.
특강까지는 잠시 시간이 있었으므로 교무실에서 차를 대접하기로 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강사분을 알아본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사인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강사분이 화장실에 가는 데도 아이들이 따라붙으며 메모지를 들이댔다. 말로만 듣던 사교육 스타강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정된 특강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후딱 지나갔다.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거친 비속어까지 사용하면서 수학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비전공자인 필자가 들어도 강의 내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특강은 무사히 끝났다. 다시 교무실로 돌아와 강사분과 함께 다담(茶談)을 나눴다. 제한된 예산이기에 강사비도 넉넉히 드릴 수 없다는 말씀에 아예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오히려 자신이 저술한 책을 3학년 학생 전체에게 무료로 나눠주기까지 했다.
궁금했다. 학생들을 수업에 빠져들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은 학생들 가르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금전관리까지도 별도로 맡아서 해주는 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오로지 가르치는 방법만 연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수업도 많은 시간을 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을 날만 골라 한두 시간 정도만 한다고 했다.
강사분의 말씀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공교육 교사로서의 무력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교사는 분명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충수업까지 하루 평균 대여섯 시간 정도의 수업을 마치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교과 지도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 생활지도에서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혹시 아이들이 일탈하지 않는지 순찰을 돌아야 한다. 점심에는 중식지도에 저녁에는 야간자율학습감독을 해야 한다.
담임을 맡고 있으면 일이 배가 된다. 아이들 상담은 기본이고 학급관리, 학교생활기록부, 창의적체험활동시스템 입력 등 매일같이 점검하고 기록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게다가 공개수업을 준비해야 하고 동료교사의 수업도 참관해야 한다. 학부모가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오면 상담에 응해야 한다. 계속 날아드는 공문서 처리로 변변히 교재 연구할 틈도 없다. 혹시 출장이나 연수가 나오면 수업을 바꾸느라 다른 선생님들 눈치도 살펴야 한다. 시험 때만 되면 성적에 민감한 아이들로부터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당국은 공교육이 왜 사교육에 밀리느냐고 몰아붙이고 있다. 교사들의 수업 시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교원평가제, 교원성과급제 등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라도 사교육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 왜냐하면 교사는 보람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교사의 사기가 꺾이면 교육은 안으로 곪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