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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사라진 도시

“세상 아이들이 다 그렇겠는가만 요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건 사실이다. 길거리에서 침을 뱉으며 담배를 문 아이들, 공공의 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욕하는 아이들. 하지만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어른은 없다. 지조를 고집하던 이 땅의 스승은 진정 어디로 간 것일까.”

요 며칠 전 연수를 받는데 강사분이 웃자고 이런 말을 한다.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자리에 모인 선생들이 의아해 하자 “남한에는 무서운 중학생들이 있어서랍니다”한다. 순간 좌중에 폭소가 터진다. 강의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유머인 줄 알지만, 가슴이 뜨끔하다.

‘무서운 중학생들!’ 물론 예전에도 격정적인 ‘질풍과 노도’라든지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의 유형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고뇌하지 않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분명 곱씹어 볼 만한 문제이다. 70~80년대의 음울한 군사문화의 언덕에서 통기타를 치며 ‘아침이슬’을 부르던 과거와 요즘 아이들은 사뭇 다르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통행금지 시간에 쫓겨 귀가하던 시절, 장발이나 미니스커트는 차라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십대들에겐 방향성이 없다. 시대에 대한 고뇌나 사상, 시쳇말로 말하면 개념이 없다.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같은 슬픔에 대한 인식도 없다. 그저 자본주의의 뒷골목에서 치마를 줄여 입고 화장을 한다.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치열한 정신이 없다. 그들은 그저 길거리에 모여 또래들을 힐끔거리며 추파를 보낸다. 네온사인 찬란한 그늘에 모여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일부는 허리를 끌어안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옐로우저널리즘에 의해 길들여지고 포르노그라피에 익숙한 그들, 그들은 세상을 게임하듯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인의예지를 논하는 장이 아니다. 아침이 됐으니까 그저 교실에 와 앉고, 수업 시간엔 졸다가 또는 깨어 떠들다가 가는, 그저 졸업은 해야 하니까 다녀야 하는 ‘계륵’이 되어버렸다.

실내화를 신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 교복은 풀어헤치고 가방은 그저 코디를 위한 액세서리가 되어 책 몇 권과 PMP 그리고 화장품이 전부인 그들. 한 손에 스마트폰을 꼭 쥔 채 등하교를 한다. 엄마 아빠도 그러려니 한다. 학교의 선생 역시 그들을 더 이상 나무라지 않는다. 방사능 허용치를 초과한 원자로처럼, 교실은 이미 금이 갔다. 교실에서의 선생은 차라리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편이 낫다.

어찌 세상 아이들이 다 그렇겠는가만 요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건 사실이다. 예의 바른 자세로 선생의 가르침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흉기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지성에 목말라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아이보다 말초적 감각으로 일탈을 꿈꾸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이란 미명하에 탈선의 자유마저 허용되어버린 아이들. 그들은 교육의 사각지대를 활보하며 상업자본주의에 익숙해지고 있다.

언젠가 동료 선생님과 간단히 약주하러 동네 호프집에 간 적이 있다. 감자튀김과 호프를 주문하려는데, 건너 테이블에서 깔깔거리는 남녀 한 패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십대 청소년임을 알겠다. 담배를 피우는 그들은 이미 소주 댓 병을 비우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주인을 불러 조용히 항의했다. 그러자 “쟤들이 학생인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하며 되레 눈을 치뜬다. 안 되겠다 싶어 지구대로 지도단속을 요청하자 “얘들아, 빨리 튀어!”라고 아이들을 내몬다.

아, 내게만 이런 모습이 눈에 띄는가. 길거리에서 침을 뱉으며 담배를 문 아이들. 교복을 입고도 서로 끌어안고 가는 아이들. 공공의 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욕하는 아이들. 몇 시간을 거뜬히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시간이 늦으면 스스럼없이 모텔을 이용하는 남녀 아이들. 정말 내가 고리타분해서 이런 것에 과민반응 하는가.

숙맥인 나는 순찰차를 몇 차례 불러 지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역부족이다.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어른은 없다. 바리세이파 사람이거나 이방인들이다. 지조를 고집하던 이 땅의 스승은 진정 어디로 간 것일까. 오늘도 나는 잿빛 환락의 도시에서 저주파의 신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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