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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지금 중태다

어렸을 적에 염화나트륨과 염화수소의 화학 반응식을 공부하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나트륨이온과 염소이온이 만나면 사람에게 유익한 소금이 되고, 수소이온과 염소이온이 만나면 인체에 해로운 염화수소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염소이온일지라도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교사가 된 나는 문득, 의사와 칼이 만나면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고 강도를 만나면 흉기가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어서 훈장이 회초리를 들면 유익한 교편이요, 나쁜 사람이 들면 위협적인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주체가 중요할 것 같다. 위험한 약재라도 미량 처방을 한다면 환자를 살리고, 남을 가해하고자 한다면 치명적인 것처럼 말이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효과가 좋다'는 말처럼, 진정 이롭고자 한다면 더러 쓴맛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에 벌을 가하는 모든 행위를 위법적인 것으로 규정해 회초리를 없앤 지금, 교사의 교육적 꾸지람마저도 폭력인 양 매도돼 버렸다. 식용버섯인 능이가 독버섯인 개능이와 비슷하다 해서 먹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빈대 때문에 초가를 불태워버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교육의 수장이 교육의 본질을 간과한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왜 익모초를 마시게 했으며, 종아리를 때렸는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들빼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그 맛을 즐긴다. 그러나 김치로 만들려면 이틀 이상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야 한다. 그래야 특유의 미락을 즐길 수 있다. 고사리도 그렇고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에게도 쓴맛이 있어서 오랜 시간 우려내야 한다는 것. 동물적이고 부정적인 속성을 지성껏 다스려야 이타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게 교육이다. 먼 이야기이지만 환웅도 곰에게 마늘을 주어 수성(獸性)을 다스리지 않았는가.

우리가 직무를 유기해 정말 회초리를 버린다면 학생들은 반생명적으로 행동할지 모른다. 인간 내부엔 동물적 충동이 항상 장전되어 있다. 사실 가장 인격적인 교실은 회초리 없는 교실일 텐데,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당장의 현실은 술과 담배와 포르노가 오픈되고 선정성 애플리케이션이 초고속으로 무한 공급되는 시대다. 이것을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로 수수방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학교 건물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주변 화단엔 먹지도 않은 우유팩들이 내장이 터진 채 뒹굴고 버려진 교과서도 빗물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스킨헤드족처럼 머리를 깎은 아이와 딱따구리처럼 염색 한 아이들이 심한 욕설로 낄낄대고 있었다.

이제는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교사에게 대든다거나 여교사를 희롱하는 것은 익숙해졌다. 학교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주도권을 장악해 친구를 괴롭히고 수업을 방해한다. 이런 야만스러운 일들이 인권이란 보호막 아래 자행된다는 게 실로 유감이다.

일부 교육감이나 후기 진보론자들에 의해 교육의 개념이 훼손된 느낌이다. 진보란 진취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요즘의 상황은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저 진보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모습. 과거의 군부독재 시대의 재야나 진보에는 눈물겨운 진정성이 있었는데 지금의 진보는 독선과 투쟁만 남은 듯하다.

진정한 진보는 전복이나 투쟁에 있지 않다. 그 핵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과거로부터 이어 온 것 모두를 인습으로 몰아붙여 갈아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갈수록 무기력과 안일무사의 수렁에 빠져드는 교사들. 교육은 지금 중태다. 검증되지 않은 진보적 처방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텃밭에 나가보았다. 가을배추가 제법 잘 자랐다 싶었는데, 가까이 보니 병충해와 잡초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농사의 본질도 모르고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내 책임! 교육이라고 해서 뭐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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