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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책과 세상> 내 ‘짝’은 누구인가

짝, 사랑

당신이 원하는 사람도, 당신을 원하는 사람도 아닌, 당신과 가장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사람이 당신의 ‘짝’이자 ‘사랑’이다.


짝, 사랑이라기에 짝사랑에 대한 책인가 하여 넘겨보았으나 아니었다. 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글이었다. 여기에서 짝이라 함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맞선 프로그램 비슷한 걸 이야기할 때 말하는 그 ‘짝’이다.

맞선이 요즘처럼 기업 수준이 될 줄은 몰랐다. 지하철 문짝에서 커다랗게 ‘결혼해 듀오’라고 몇 번이나 문이 여닫히는 걸 보면 정말이지 대기업 수준이다. 소위 알음알음으로 ‘매파’를 낀 중매를 통해 짝을 찾는 광경은 80년대를 그린 박완서의 문학에서나 남아 있는 것 같다. 상큼하고 세련되게, 커다란 전광판에 나선 당당한 결혼정보업체 광고에서 활짝 웃고 있는 선남선녀의 미소는 아마 우리 삶에서 결혼이 조건과 조건의 결합이라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황상민의 ‘짝, 사랑’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결혼에 있어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송곳처럼 꼭 집어 낱낱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정말 돈 안 보고 이 사람 하나만을 보고 세속적 조건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있다면 이 둘은 ‘낭만형’ 사랑이다.

즉 돈이나 명예, 지위 같은 것만 조건이 아니라 이것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의 ‘조건’ 중 하나인 것이다. 돈이 없고 뒤주에 쌀이 떨어져 가도 이 사람과 함께 굶는 내가 너무 아름다워 보이게 할 수 있는 그런 매력을 지닐 것. 하지만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창문으로 행복이 달아난다는 말이 있듯이 생활의 불편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사람을 보는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내리면 의무형, 혹은 종속형 결혼으로 변질된다.

‘애들 때문에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의무형이다. 이 밖에도 황상민은 조곤조곤 예를 들어 사랑 때문에 가난한 시인과 결혼한 여성, 괜찮은 형편의 집에서 곱게 자라 집에서 정해 주는 딱 맞는 혼처와 결혼한 여성, 계산을 잘 맞춰 자신의 생활수준이 더 떨어지지 않을 적당한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한 여성 등이 예시로 등장하는데, 저자는 결혼 전의 성향은 물론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게 된 결혼 후도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애들 때문에 산다는 의무형, 최소한의 생활만 만족되면 신경 쓰지 않는 종속형, 애당초 배우자가 그다지 필요 없고 저 혼자 죽고 사는 맛으로 살고 있는 솔로형, 결혼 후에도 즐길 것은 다 즐기면서 배우자에게도 자신을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의외로 모든 유형 중관대한 풍류형 등 결혼의 시작은 비슷했어도 그 만남이 오래될수록 결혼의 면모도 바뀐다.

그래서 황상민이 말하려는 것은 이러저러하니 처음부터 조건을 서로 잘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조건을 따지는 것이 잘못인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원하는 조건이 뭔지 알지 못할 때 만남이 불행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남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모든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원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사실 결혼의 조건 이외의 모든 욕망도, 보여 지는 것이 중요한 작금의 한국에서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들 원하는 그것을 갖고 싶어 하다가 파국이 오고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어!’라고 탄식하지만 그 때라고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걸 알기 위해서,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민과 희생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결혼정보회사 같은 것은 그런 조건에 맞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지름길일 수 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조건’은 용한 소개팅 주선자도, 결혼정보회사도 찾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황상민이 말하는 ‘짝’ 이란 당신이 원하는 사람도 아니고 당신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고 결국 당신이 가장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낸, 당신과 가장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짝’이라는 것이다.

부록으로 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상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질문지가 들어 있는데, 아예 따로 떼어 들고 다니면서 나와 잘될 가능성이 있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결혼정보회사보다 이 책 한 권이 더 남는 장사일 것 같다. 나도 다음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해 본 다음 즉시 독자 여러분께 후기를 ‘쌔워’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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