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는 동심이다. 푸른 하늘을 멀리, 높이, 날고 싶은 유년의 추억에 닿아있다. 불혹의 나이에도 유년의 꿈을 쫓는 사람, 이응률(41·서울청운초)교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직접 대본을 쓰고 제작한 청소년 연극 '종이비행기'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던 22일, 20 여 년 간 소중하게 키워온 그의 연극사랑이 작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 이륙할 수 있을까 새벽 6시. 이 교사는 겨울 안개가 짙게 낀 자유로를 달린다. 안개 등과 비상등을 켜고 깜박깜박 달린다. 시속 90km...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은 매일 그를 짓누른다. 그러나 대학로의 공연 현실은 자유로의 활낳릿?더 불안하다.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 협찬금 없이 제작을 한다는 것.
그 것은 미친 짓이다. 뻔히 알면서, 그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했다. 왜? 그냥 좋아서, 아니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랑한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온 몸으로 달려가 뜨겁게 포옹하고 입맞춤을 하는 것. 그 것이 사랑이 아닌가. 비록 결과가 따귀를 맞는 일이 될지언정...
연극에 대한 이 교사의 짝사랑(?)은 86년 강원일보, 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동화작가의 길을 걷게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89년 폐광의 혼란 속, 결손가정이 급증하던 교실에서 연극은 아이들을 하나로 엮어 준 매개체가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어린이연극에 빠져들었다. 96년 극단 연우무대와 첫 작품 '사랑의 빛'을 기획했으나, 어린이연극을 하겠다는 배우를 찾기는 힘들었다. 삼류 배우들이 아이들을 현혹해 돈벌이 수단으로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실패를 딛고 어렵게 2000년 '사랑은 아침햇살'을 기획했으나, 여전히 극단 내 희망자가 없어 신입 단원을 뽑아 연극을 제작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어린이관객도 들지 않았다. 이 교사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교사들을 만났다. 동료교사들마저 '잡상인' 취급하며 '연극해서 돈 벌 생각 버리라'는 충고(?)를 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전화를 걸고, 인터넷 홍보를 했지만, 여전히 어린이관객은 들지 않았다.
# 드디어, 비행기가 날다 지난 5월 '종이비행기' 기획을 돕겠다는 제작사가 나섰다. 세 차례의 배우 오디션을 거쳐 7월,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제작사는 상업적 성공이 어렵다며 슬며시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또다시 좌절. 이 교사는 사재(私財)를 털었다. 카드로 그룹사운드 종이비행기의 악기부터 구입했다.
집을 판 돈으로 배우들의 개런티를 지급하고, 제작비 1000만원도 내놓았다. 초등교사의 연봉을 넘는 제작비를 들여 정성을 다한 것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학부모와 교사들의 지지, 96, 97년 서울 경희초등교에서 함께 연극을 지도했던 영화배우 박상면 씨의 후원으로, 드디어 오늘, '종이 비행기'-해체 위기에 내몰린 고교생 그룹사운드 '종이 비행기'와 술집 작부인 어머니를 둔 초등학생 욱이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이 작품은 내년 1월 20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매일 오후 3시, 6시), 1월 29일-3월 31일까지 인켈아트홀(매일 오후 7시. 9시)에서 공연된다.-는 비상을 시작한 것이다.
# 멀리 높이? 아니, 떨어지면 매만지고 다듬어 다시... 86년 겨울,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 교사. 그에겐 자식이 없다. 그러나 그에겐 자식이 있다. 청소년을 위한 좋은 연극을 낳아 잘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제작하는 연극이 더 많은 청소년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넣어주고, 공연체험을 통해 학생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먼저 하늘로 보낸 아들이, 내 안에 동심으로 살아있는 한, 그 녀석을 위해 저는 청소년 연극운동을 계속할 겁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어린 녀석을 보았습니다. 되돌아오면 또 날리고, 또 날리는 그 녀석을 보며 어쩌면 종이비행기, 그 것은 멀리, 높이, 날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어지면 날개를 매만지고 다듬어 다시 반복해 날리는 것…. 이응률 선생님의 모습은 종이비행기를 닮아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오늘, '종이비행기' 하나, 접어 날려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