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교육 강화에 한목소리를 내던 여야 정치권이 한국사 교육 강화 방안이 확정되자 동상이몽에서 깨어나 ‘교육’을 ‘정쟁’의 도구로 삼기 시작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식민독재사관을 부추기는 청소년 유해책자”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도 하루 앞선 4일 열린 ‘근현대사 연구교실’ 첫 회의에서 “좌파와의 역사전쟁에 승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교육이 정쟁으로 비화된 데는 8월 30일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 회장(공주대 교수)이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에서 최종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자 일부 언론에서는 군부 독재를 미화하고 5·18 당시 계엄군 발포 사실을 누락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도 일본을 미개한 한국인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로 묘사하고 위안부를 근로정시대와 혼동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어서 2일 광주시교육청(교육감 장휘국)이 채택반대운동에 나서고, 4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까지 나서 “교학사 교과서는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아일보 창업주인 인촌 김성수 씨를 항일인사로 되살렸으며 쿠데타와 유신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하며 “검정 합격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실제 교과서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이념대결에 기초한 자의적인 해석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교과서는 5·18에 대해 “세계적으로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선례가 됐다”고 평가하고, 광주 시민군 궐기문을 게재하면서 “계엄당국이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고 발포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신체제도 ‘독재’로 평가하고, 신군부에 대해서도 “초법적인 조치를 통하여 정적을 제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제시대의 서구적 시간관념 도입에 대한 기술도 각종 규율이 강제됐다는 내용에 이어 일제로부터 근대적 시간 의식과 각종 기념일 준수를 강요당했다는 서술이다. 군 위안부 관련 오류를 시인했다고 보도된 이명희 교수는 “근로정신대와 군위안부를 혼동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공식적인 학술토론을 통해 타 교과서와 동일한 차원에서 서술된 현재 서술이 정말 학생들에게 혼돈을 줄 수 있다고 결론이 난다면 수정할 수 있다는 교과서 필자의 마땅한 자세를 밝힌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학교 현장은 검정에 통과된 교과서에 대한 논쟁은 소모적 정쟁이라는 입장이다. 이두형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장(양정고 역사교사)은 “검정위원에는 진보학자와 보수학자가 다 포함돼 있고 사실 진보성향의 위원들이 더 많은는데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면 큰 문제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하다”며 “선택은 현장의 교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과정과 편수용어를 반영한 교육부 집필기준에 따라 기술되고,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라면 ‘좌편향’으로도 ‘우편향’으로도 낙인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보수는 진보학자가 기술한 교과서를 비판하고, 진보는 보수학자가 기술한 교과서를 비판하는 등 이념적으로는 대립이 첨예하지만 현장에서 가르칠 때는 극소수의 교사를 제외하고는 일부 우려스러운 문구에 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가르친다”고 설명하며 교과서의 세부적인 문구보다는 역사교사의 실제수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