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 해소만 강조하면
영재는 교육기회 박탈
특목고도 영재고 해당
“‘아동낙오방지법’ 시행 10여 년 간 기초미달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올리고 교육격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동안 우수한 영재들은 무시당해 왔습니다.”
워싱턴의 교육 싱크탱크인 토마스 B 포드햄 연구소의 소장이자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체스터 핀(69·사진) 박사는 6일 한국교육개발원(원장 백순근) 영재교육센터 연구진과 만난 자리에서 교육격차 해소만이 공교육의 역할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 교육차관보를 지낸 핀 박사는 정부가 저학력 학생들에만 매달릴 때 영재들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음을 주목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 일본, 싱가포르, 핀란드 등 10여 개국을 방문하고 있다.
핀 박사는 ‘평등성’의 기치 아래 기초미달 학생들의 교육격차 해소에만 매달리는 교육정책을 ‘나쁘다’고 단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정책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나쁘다”며 “학생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도 제공하지 않는데다가 미래인재 양성에 실패하고 인적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만여개 고교 중 우수학생을 선발해 특별한 교육을 하는 학교는 토마스제퍼슨 과학고, 브롱크스 과학고 등 165개교에 그치는 미국 상황을 설명한 핀 박사는 “이런 특별한 교육과정의 혜택이 필요한 학생이 그 4배에 달한다”며 “이 학생들이 충분한 교육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핀 박사는 “학력미달 학생에게만 관심을 갖는 정책은 우수한 학생들은 우수하니까 그냥 놔둬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우수한 학생들의 수요를 공교육 시스템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결국 좋은 교육을 받은 부모를 둔 중상류층 학생들만 재능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게 된다”고 지적했다. 저학력 학생에게 뿐만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에게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우리의 영재교육을 살피면서 “한국의 경우 영재고와 특목고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법의 차이일 뿐 학생 입장에서는 결국 큰 차이가 없다”며 “해당 분야의 학력이 특출하다면 영재로 볼 수 있는 만큼 특목고도 영재학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영재선발 방식을 지필시험에서 교사추천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방향은 사교육 효과 배제와 객관성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며 “교사추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핀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미국 사회가 우수학생들의 필요에도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연구 외에도 강연, 언론기고, 장관면담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던컨 장관을 몇 번 만났는데 다음에 주력할 현안이 뭔지 물어와 매번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장관은 아직도 낙후 학교와 기초미달 학력 학생들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