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일 反美 테러사건 이후 유럽의 학교 현장에서는 종교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전통 국교인 카톨릭교까지 거부하면서 `종교교육의 중립성'을 지켜온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급부상한 종교교육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테러사건 이후 대다수 현장 교사들은 학생들이 단순한 `조작여론'에 빠지지 않도록 진실을 설명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회교도 이민집단이 대거 거주하는 파리 외곽 북부지역 Seine-Saint-Denis 소재 한 중학교의 제롬 벰브네 교사(역사지리)는 테러사건 직후 다른 과목 교사들처럼 학생들의 질문 공세로 곤욕을 치렀다.
벰브네 교사는 "회교도 출신 이민가정 자녀들은 아직도 프랑스 급우들로부터 비난받을까봐 무척 두려워한다"며 "그들은 교사가 이슬람이 평화와 자비의 종교임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이슬람 경전 코란의 여러 구절들을 수업에 도입해 학습하면서 오늘날 경전의 해석을 서기 632년 당시와 꼭 같이 할 수는 없음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작끄 랑 현 교육부 장관은 "오늘날 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이 그 어떤 시대보다 더 절실해졌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 그리고 랑 장관은 지난 연말 명망 있는 철학자 Regis Debray에게 `학교에서의 종교 관련 교육의 자리매김'에 관한 특별 연구임무를 맡기기까지 했다. 연구결과는 곧 보고될 예정이다.
`종교교육의 중립'을 취해온 프랑스가 교육과정에 종교문제를 다시 도입한 지는 사실 1996년부터다. 이민계층으로 인해 사회집단 구성비가 달라지고, 그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몰이해와 이민집단 청소년들의 폭력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면서 중학교 교육과정 속에 이슬람과 헤브라이 문화에 관한 장과 기독교 문화의 발생에 관한 장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고교는 1학년서부터 역사과목으로 기독교 문화와 12세기의 지중해 문명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중학교 1학년생들은 국어시간에 위대한 종교경전 텍스트를 학습하고 있다. 한편 오는 2002년 9월 新 학년에 새로이 개편되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유럽의 사원들과 종교축일의 기원 등에 관한 내용이 새로이 추가된다.
이처럼 다소 짜깁기 식이 돼버린 프랑스의 종교교육에는 고통스런 정교분리의 과거가 깔려 있다. 프랑스는 1908년 쥴르 페리 교육개혁 당시까지도 아동교육에는 반드시 성경학습이 포함돼야 한다고 규정했었다. 하지만 1960년대 脫기독교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구의 기독교는 대부분 학교에서 탈퇴했다. 놀랄 만한 현상은 脫기독교화를 맞이한 당시 `무신앙의 이성적 인간시대 도래'를 예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현재 프랑스 인들은 10명 중 8명이 카톨릭 교도로 자처하고 있으며,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8∼12세 초등생 30∼40%가 카톨릭 교리학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민 종족으로 인한 프랑스 사회 구성원의 비율이 달라지면서 각 사회 계층에서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데 기인한다.
특히 1989년 일어났던 이슬람 가정 여아들의 머리수건 벗기 불복이 프랑스인들의 종교적 정체성 요구현상의 시발점이 됐다. 이밖에도 이슬람계 학생들을 위한 돼지고기 없는 학교급식이라든가 이슬람의 몇몇 축일을 위한 수업 면제 등 학교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각자의 종교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일부 학자들은 脫기독교화로 학생들이 종교와 종교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며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성화 속의 순교하는 성인과 화살 맞아 죽어 가는 인디언을 구별 못하고 성모 마리아를 아예 모르는 학생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단지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알고 있는 학생도 수두룩했다.
종교교육에 대한 커져 가는 관심 속에 지난해 말 15∼18세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7%의 고교생이 학교 내 종교교육에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고교생들은 세계 3대 종교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종교에 관한 학습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종교교육을 위해 정규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교육과정 개편을 통한 본격적인 종교교육은 사회구성원의 다양화로 점점 종족집단화 되고 있는 현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질 종족간의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랑 교육부 장관의 특별임무를 맡은 Regis Debray도 "내 임무는 물과 불을 화합시키는 일"이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