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모든 것을 소재로 담아냅니다. 하지만 유독 축구에 관한 영화는 드뭅니다. 지금처럼 전 세계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 있는 형편을 감안하면 신기한 일이라고나 할까요. 넘쳐나는 스포츠영화 가운데 축구영화가 거의 없는 이유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 비해 축구가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축구가 홀대받게 된 것은 TV가 중계를 외면한 탓이 크다고 합니다. 매 쿼터나 이닝마다 광고를 넣을 수 있는 농구나 야구에 비해 축구는 전후반 각각 45분 동안 광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그렇다치고 월드컵 때마다 대륙이 들썩들썩한 유럽에서도 축구 소재의 영화가 드문 것은 왜일까요. 축구 자체는 인기 있지만 유럽에서는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인기가 없습니다. 주인공의 인간승리로 끝나는 단순한 구성이 매력이 덜하다는 것이지요.
그럼 축구가 주인공인 영화가 아예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할리우드산 축구영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거장 존 휴스턴 감독의 1981년작 ‘승리의 탈출’(원제 빅토리)을 꼽을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할리우드가 이미 여러 차례 우려먹은 소재인 수용소 탈출과 스포츠정신을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걸작은 아니어도 꽤 신선한 맛을 지니고 있지요. 긴박한 경기장면과 선수들의 복잡한 내면갈등이 아슬아슬함을 더하고, 포로로 출연한 축구 황제 펠레를 비롯한 브라질 축구 스타들의 현란한 솜씨까지 덤으로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축구정신은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던 휴스턴 감독의 말도 기억에 남구요.
월드컵의 리허설인양 최근 개봉된 주성치의 ‘소림축구’는 지난해 6000만 홍콩달러(약 100억원)를 벌어들이면서 홍콩영화 흥행신기록을 수립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소림족구(少林足球)’. 중국에선 축구를 ‘족구(足球)’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랍니다. '소림축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화려한 소림무술을 축구에 결합시킨 희극지왕 주성치식의 독특하고 코믹한 축구영화입니다.
축구에 열광하는 티베트 망명 승려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컵'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어린 수도승 오기엔은 호나우두의 등 번호를 새긴 속옷을 입고 다닐 만큼 축구에 열광적인 14세 소년. 영화는 전통적인 승려복을 입고 있는 승려들과 코카콜라 캔을 차는 승려들의 선명한 대비 속에서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화해를 추려냅니다.
이밖에 ‘쉬리’의 마지막에 등장한 남북한 축구 장면,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 사람들이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TV 안테나를 설치하는 장면 등은 인상깊게 남아있는 축구 신입니다. 그러고 보니 축구는 우리를 '화합과 희망'이라는 주술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