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들어서면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잠을 깨는 교실. 나 역시 아이들의 조잘거림에 생기가 넘친다. 나의 잠든 세포를 살아 숨쉬게 하는 이 아이들과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하며 얼굴을 살펴나간다.
벌써 교단에 선지도 어언 15년이 되어간다. 처음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설렘으로 타성에 젖지 말고 열심히 이 길을 가자고 다짐했던 작은 바램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온 15년이다. 저마다 다른 빛깔을 가지고 내게 다가온 아이들과 함께 하는 탐험의 여정. 때로는 꽃과 나비가 있는 봄 동산 같은 여정으로 즐거워하고, 새로운 길을 만나면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려가며, 비바람이 칠 때는 잠시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기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교사로 가는 길이 힘들고 외로울지라도 오직 나만을 믿고 따르는 여러 빛깔의 순진함에 희망을 걸고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면 어슴푸레 움직이는 작은 미동이 예민한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한다. 매년마다 겪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know-how가 없는 교사들은 이곳저곳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담임 및 부서 업무 등으로 자문을 구하기에 바쁘기만 하다. 갈수록 달라 보이지 않는 교육 행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신문에서 접한 사실이지만 요즘 교사들은 담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교사들의 잔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하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 대한 불평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한편으로는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빈정대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직업에 만족보다는 불만족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드리워진 그림자를 하나 둘씩 벗겨보면 정말이지 그 어느 누구보다 아픔을 많이 간직한 사람들이 우리 교사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비일비재하게 바뀌어 지는 입시제도에 "또 시작이구나!"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동료 교사의 말에 쓴웃음을 지어본다.
교육정책이 바뀌어 질 때마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매스컴 내지 신문 지상에 대서특필 보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때마다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학생 모두가 주먹구구식의 교육 정책을 수용해야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가 아닌지 어이가 없어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무엇인가 달라지겠지'한 생각들이 요즘들어 후회가 된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교육부총리의 자리가 공백으로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부총리 후보 선정에 많은 사람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각종 단체와 시민참여연대에서 물망에 오른 누구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 정책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한 일면이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고 단정 짓는 사람도 있었다. 일간에는 우스갯소리로 ‘부처와 예수님’을 합쳐 놓은 사람을 찾기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라는 말이 안하무인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작금.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0시 수업'을 없애기로 한 모 교육청의 발표에 환영의 뜻을 표명하고는 싶으나 과연 그것이 얼마까지 아니 몇 시간 갈 것인가에 더 의구심이 생긴다.
과거를 답습하는 것도,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객관성을 배제한 정책은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21세기 미래지향적인 교육정책이 수립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