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웰빙 시대다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 각 계층에서 나타나는 ‘웰빙’ 용어가 음식, 건강, 생활 등 다양하게 확산되어 마치 우리가 완전한 웰빙 국가에서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배가 고파서 허덕이던 때가 언제라고 지금 배를 줄여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6.25가 발발한 지 몇 년이 지났는가? 50년이 지난 지금 음식이 남아돌아 버려야 할 상황이요,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옛 가난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치보다 햄버그를, 된장국보다는 라면을 더 좋아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성세대들의 교육방침에 대한 반항과 학교에서 난무한 행위들이 교내의 문제로만 그치는 데 한계를 드러내 교내 경찰 상주, 교사 내에 CCTV 설치를 해야 한다는 등등 자녀 사랑과 제자 사랑에 웰빙 교육 사랑이 새로운 교육공학의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저축이 미덕이다. 절약만이 살길이다 하던 시대가 반동형성으로 저축이 악덕이 되고 절약이 나라의 경제를 얼어붙게 만드는 경제주기를 지금에 와서 무엇으로 풀어야 할 지? 흥부와 놀부를 동네북으로 만들어 가는 시대.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 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시켜 준다고 하여 집단적으로 수술을 받게 한 것을 잊어 버리기가 무섭게 이제 아이들이 부족해서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 군에서는 군인이 부족한 실정.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 가야 국가의 경제도 정책도 거짓이 아닌 진실로 먹혀들어갈지 그것이 아이러니다.
세상은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한다고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그 가속도가 첨가됨으로써 속도위반으로 달려갈 것임은 불보 듯 뻔한 것 같다. 학생들의 지도를 인성 교육의 부재에서 보고 싶은 것도 인성 교육의 초점이 어디인가 하는 그 기준을 찾기가 무섭게 인성 교육의 중심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 교육이 부재한 곳에서 학생 지도는 정의적인 영역의 한계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성이라는 지의 가치와 정의적이라는 체험의 축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내도록 노력하는 옴니버스식 사고를 학교의 구성원인 교사 개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오늘의 학생지도는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생활지도의 기본 원리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관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자율성과 적응성 그리고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는 원칙에서 대상자의 자아를 실현시키는 데 있다. 이에 따른 생활지도의 실천 원리는 대상 학생을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으로, 스스로 주변 과학환경에서 참다운 자기 자신을 찾아 차별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성 부활로, 교육공학에 바탕을 둔 전인교육으로 그 실효성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자녀사랑이 가족사랑이요, 제자 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옛 구호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도 제자와 스승 사이의 애틋한 정이 못 다 핀 꽃 한 송이처럼 미련이 남아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때문은 아닐까? 제자를 사랑하는데 웰빙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되 웰빙 애정으로 감싸야만 될 상황이 도래한 7차 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자기주도적 학습과 범교과 학습은 궁극적으로는 바로 이 웰빙 전천후 교육의 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웰빙 사랑 교육은 중용의 사랑이다. 치우치지 않는 사랑. 그것이 진정 우리시대에 필요한 사랑은 아닐까. 고도로 발전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중심을 잊어 버리면 가속도를 붙여 달려가는 타임머신을 놓쳐 영원한 낙오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인 것이다. 쾌락과 편리와 포근함만을 추구하는 시대가 심화될수록 오늘을 살아가는 자녀들과 학생들은 타인과 조화를 맞추는 법을 모른 채 자기만의 코드에서 왕자병에 걸린 채 정저지와의 입지를 벗어나지 못하지는 않을 지.